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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자료

49. 중국도자사/이용욱 저/ 미진사

49. 중국도자사/이용욱 저/ 미진사

 

이 책도 아내가 경성대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을 반납하기 전에 내가 빌려 읽어봤다.

중국의 도사사를 알기 쉽게 시대순으로 구분하여 도요지, 소성방법과 기술, 유약과 안료의 문제, 기형의 변화와 장식 문양 등으로 엮어놓았다.

 그중 자주요에 관한 사항을 요약하면

자주요는 북방 최대의 민요 계통의 자기를 말한다.

자주요에 관한 것은 송대 문헌에는 기록이 없으며 면대 초기 문헌에서 부터 조금 나온다.

자주요의 명칭 유래는 자주요가 용천요나 정요처럼 요지의 명친을 붙이지 않은 것으로 보아 북방 민간에서 사용된 잡기의 총칭이라는 주장과과 또 다른 주장은 자주요는 북송시대에 같은 원료, 같은 소조방법, 같은 화문장식을 쓴 요들의 총칭으로서 하북, 하남, 산서, 산돈 일대의 요장을 말하며 이중 하나인 하북성 자현의 자주지방에서 명칭을 따서 자주요라 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볼 때 결국 자주요 자기란 북방의 민요계자기로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제작되었으며 대담하고 강렬한 화문장식을 했던 자기의 총칭임을 알 수 있다.

자주요 주요요지는 하북성 한단시, 관대진, 팽성진 일대이며 주로 베개만 생산했던 동애구촌, 야자촌이 있다.

자주요 장식의 방법은 백유, 흑유, 백유획화, 백유갈반, 백유녹반, 백유유회흑채, 백유유화장채, 백유유회흑유획화, 백유유회흑채획화, 진주지획화, 녹유유화흑채, 백유홍록채, 저온연유삼채 등이 있다.

우선 백유의 장식기법을 보면 다음과 같다.

자주요 백유는 요백을 많이 사용하였다. 요백이란 태토에 백약을 바르고 말린 후에 다시 한번 유를 발라 소성한 백유이다. 자주산의 자토는 석회가 2층 기암석으로 되어 있으며 그 중 철 함양이 많은 것은 소성시 어두운 색조를 띤다. 근처에서 나오는 또 다른 종류인 철 함양이 적은 것은 광택이 백색성이 있으며 이런 백색 암석 분말을 곱게 부수어 물과 혼합하여 사용하였다.

1) 백유획화

제일처음 정요에서 시작되었던 방법으로 아직 마르진 않은 자태위에 날카로운 공구를 이용해서 문양을 그었던 방법이다. 이방법은 주로 야자촌과 팽성진의 자기에 보이며 완과 반에 주로 장식하였다. 문양의 소재는 연꽃, 파도문양, 권엽문을 애용하였고,획화의 선은 유려하며 문양의 방식은 자유롭게 배치하였다. 이 획화의 방법은 빠른 시간에 완성하여야 유려한 선을 얻을 수 있으므로 고도의 숙련성이 요구되었다.

2) 백유척화(박지기법)

문양을 제외한 여백을 파내어 황갈색의 태토를 보이게 하고 백색의 주제를 돋보이게 한 장식이다. 이 방법은 하남지역에서 유행하였으며 주로 완(작은사발), 세기(洗器)등의 외면에 장식하였고 문양의 소재는 주로 가지가 얽힌 꽃이 많다. 

3) 백유유화흑채. 백유유화장채

자주요 자기의 주요 장식기법으로 백유 바탕에 흑채와 장채(된장,간장,육장,장조림등)로 문양을 그리고 투명유를 입혀 소성한 것이다. 관대요의 주둥이가 직선이며 뚜껑이 있는 관(단지)과 배가 큰 완에서 가장 많이 보인다.  또한 동애구요의 자침도 이 방법을 채택하여 인물, 화훼,노사(백로), 기러기, 갈대 등의 문양을 표현하였다.

4) 백유유화흑채획화

성형된 기물에 순백의 화장토를 바르고 그 위에 섬세하게 흑료로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다시 날카로운 공구를 이용해서 흑료의 선과 윤곽선을 그어서 백색의 화장토를 보이게 한 후 투명유를 발라 소성하는 방법으로 흑백의 강렬한 대비를 이용한 것이다. 주로 관대요 작품에서 보이며 문양은 화훼, 용, 국화 등을 이용하였다. 표면도 색채만큼 강렬하여 춤추는 용, 입벌리고 승천하는 용의 모습을 힘차게 묘사하고 있다.

5) 백유유화장채획화

유화흑채와 같은 방법으로 흑채 대신 장색유를 사용한 것이다. 이 장색유는 고의적으로 낸 색채 같지는 않으며 극소수의 기물이 그것을 말해준다. 다만 이 장색유는 소성온도가 높아질 때 우연히 출현했으나 특수한 효과를 가져와 애용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中國) 역사연대표(歷史年代表)
왕조구분 연대
        하(夏) 기원전2070-기원전1600
        상(商) 기원전1600-기원전1046
주(周)   서주(西周) 기원전1046-기원전771
  동주(東周) 기원전770-기원전476
  춘추시대(春秋時代) 기원전770-기원전476
  전국시대(戰國時代) 기원전475-기원전221
        진(秦) 기원전221-기원전206
한(漢)   서한(西漢) 기원전206-23
  동한(東漢) 25-220
삼국(三國)   위(魏) 220-265
  촉(蜀) 221-263
  오(吳) 222-280
     서진(西晋) 265-316
동진십육국   동진(東晋) 317-420
(東晋十六國)   십육국(十六國) 304-439
남북조(南北朝)  남조(南朝) 송(宋) 420-479
제(齊) 479-502
양(梁) 502-557
수(隋) 557-589
 북조(北朝) 북위(北魏) 386-534
동위(東魏) 534-550
북제(北齊) 550-577
서위(西魏 535-556
북조(北朝) 557-581
        수(隋) 581-618
        당(唐) 618-907
오대십국   후량(后梁) 907-923
(五代十國)   후당(后唐) 923-936
    후진(后晋) 936-947
    후한(后漢) 947-950
    후주(后周) 951-960
    십국(十國) 902-979
송(宋)   북송(北宋) 960-1127
  남송(南宋) 1127-1279
        료(遼) 916-1125
     서하(西夏) 1038-1227
        금(金) 1115-1234
        원(元) 1271-1368
        명(明) 1368-1644
        청(淸) 1644-1911
    중화민국(中華民國) 1912-1949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 1949.10.1-

  

 

고려의 연대표

 

- 제1대왕 태조(太祖, 877~943) 918~943

이름은 왕건(王建). 신라 궁예의 부하로, 부하에게 옹립되어 송도에 도읍을 정하고 왕위에 오름. 935년 신라와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함


- 제2대왕 혜종(惠宗, ?~945) 943~945

휘는 무(武). 태조의 맏아들. 대광인 왕규(王規)의 음모에 신경쓰다 병사함

 

- 제3대왕 정종(定宗, 923~949) 945~949

왕규의 난을 평정하고 불교를 숭상함. 서경(평양)에 왕성을 쌓고 천도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음

 

- 제4대왕 광종(光宗, 925~975) 949~975

휘는 소(昭). 자는 일화(日華). 노비 안검법을 제정하고, 후주에서 귀화한 쌍기(雙冀)의 건의에 따라 과거제를 실시함

 

- 제5대왕 경종(景宗, 955~981) 975~981

휘는 주(인宙). 자는 장민(長民). 광종의 아들. 전시과를 제정함. 방탕한 생활로 정사를 돌보지 않았음

 

- 제6대왕 성종(成宗, 960~997) 981~997

휘는 치(治). 문물제도를 정비하고, 유교를 국가지도의 원리로 삼아 중앙집권적 봉건제도를 확립함

 

- 제7대왕 목종(穆宗, 980~1009) 997~1009

휘는 송(誦). 경종의 맏아들. 전시과를 고치고 학문을 장려 하는 등 치적이 많았으나 강조(康兆)에게 피살됨

 

- 제8대왕 현종(顯宗, 992~1031)

1009~1031 휘는 순(詢). 천추태후의 강요로 중이 되었다가 강조의 옹립으로 즉위함. 거란의 침입으로 혼란 하였으나, 강화하여 국내가 안정되고 문화가 발전함

- 제9대왕 덕종(德宗, 1016~34) 1031~1034

휘는 흠(欽). 왕 2년에 천리장성을 쌓고, 국사편찬 사업도 완성함.

 

- 제10대왕 정종(靖宗, 1018~46) 1034~1046

휘는 형(亨).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여 천리장성을 쌓고, 장자 상속과 적서 구별을 법으로 정하였음

 

- 제11대왕 문종(文宗, 1019~83) 1046~1083

휘는 휘(徽). 자는 촉유(燭幽). 많은 법류을 제정하여 내치의 기초를 닦음. 학문을 좋아하고 서예에 능함

 

- 제12대왕 순종(順宗, 1046~1083) 1083

문종의 맏아들로 즉위한 해에 죽음

 

- 제13대왕 선종(宣宗, 1049~1094) 1083~1094

휘는 운(運). 문종의 둘째 아들. 동생인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중국 송나라에서 불경을 연구하고 오는등 고려문화의 융성기를 이룸

 

- 제14대왕 헌종(獻宗, 1084~1097) 1094~1095
휘는 욱(昱). 즉위하자 이자의(李資義)의 난을 평정하고, 다음해에 신병으로 숙부에게 왕위를 물려줌

 

- 제15대왕 숙종(肅宗, 1054~1105) 1095~1105

문종의 셋째아들. 조카인 헌종을 폐위 시키고 즉위함. 해동통보를 주조하여 화폐제도를 시작, 고려의 황금시대를 이룸

 

- 제16대왕 예종(睿宗, 1079~1122) 1105~1122

휘는 우. 학문을 좋아하여 학교를 세우는 등 학문을 크게 진흥 시켰음

 

- 제17대왕 인종(仁宗, 1109~1146) 1122~1146

휘는 해(偕). 어린나이로 즉위하여 이자겸의 난, 묘청의 난 등을 격었으나 선정을 베품. 김부식에게 삼국사기를 편찬케 함

 

- 제18대왕 의종(毅宗, 1124~1173) 1146~1170

휘는 현(晛). 인종의 맏아들. 무신을 천대하고 문신을 우대하다 정중부(鄭仲夫)의 난이 일어나 폐위되고, 명종3년에 경주에서 살해됨

 

- 제19대왕 명종(明宗, 1131~1202) 1170~1197

휘는 호(皓). 의종의 동생. 정중부의 추대로 즉위하고 최충헌(崔忠獻)에 의하여 쫏겨남

 

- 제20대왕 신종(神宗, 1144~1204) 1197~1204

휘는 탁(晫). 인종의 다섯째 아들로 최충헌이 옹립한 왕임

 

- 제21대왕 희종(熙宗, 1181~1237) 1204~1211

휘는 영. 신종의 맏아들. 최충헌을 없애려다 오히려 쫏겨남

 

- 제22대왕 강종(康宗, 1152~1213) 1211~1213

휘는숙(璹), 정, 오. 명종의 맏아들. 명종과 함께 쫏겨났다가 최중헌에게 옹립되어 왕위에 오름

 

- 제23대왕 고종(高宗, 1192~1259) 1213~1259

몽고의 침입을 받아 강화로 천도한 뒤 28년동안 항쟁 하였으나 결국 굴복함. 몽고를 불교의 힘으로 격퇴하기 위하여 팔만대장경을 조판함

 

- 제24대왕 원종(元宗, 1219~1274) 1259~1274

휘는 정. 몽고에 굴욕을 당한 뒤 즉위. 임연의 난, 삼별초의 난 등으로 화평한 날이 없었음

 

- 제25대왕 충렬왕(忠烈, 1236~1308) 1274~1308

원(元)나라에 굴복하여, 원의 제국공주를 왕비로 맞아들이는 등 원나라의 지나친 간섭을 받았음

 

- 제26대왕 충선왕(忠宣, 1275~1325) 1308~1313

휘는 장(璋). 몽고 황실의 딸과 결혼하고 1298년 왕위에 올랐으나 7개월만에 충렬왕이 다시 복위. 이후 10년간 원나라에 머물다 다시 즉위하여 원나라에서 국정을 봄. 고려와 원나라의 학문교류에 힘을 씀

 

- 제27대왕 충숙왕(忠肅, 1294~1339) 1313~30, 32~39

휘는 도(燾). 정사에 염증을 느껴 아들 충혜왕에게 양위 하였다가 행실이 좋지 않자 2년만에 복위함

 

- 제28대왕 충혜왕(忠惠, 1315~1344) 1330~32, 39~44

휘는 정(禎). 행실이 좋지 않아 정사를 혼란에 빠뜨렸음. 원나라로 귀양을 가다 병사함

 

- 제29대왕 충목왕(忠穆, 1337~1348) 1344~1348

휘는 흔(昕). 원나라에 볼모로 있다가 8세에 원나라에 의하여 즉위함. 어머니 덕녕공주(德寧公主)가 섭정함

 

- 제30대왕 충정왕(忠定, 1337~1352) 1348~1351

휘는 저. 12세에 즉위하여 외가친척인 윤시우(尹時遇)와 배전(裵佺) 등으로 인해 정치가 문란해지고, 왜구의 침입이 잦아 3년만에 폐위됨

 

- 제31대왕 공민왕(恭愍, 1330~74) 1351~1374

원나라 배척운동을 벌여 친원파인 기(奇)씨 일족을 제거하고, 빼앗긴 영토를 수복하여 국위를 떨침. 말년에 왕비인 노국공주가 죽자 정사를 그르쳐 최만생 (崔萬生)과 홍륜(洪倫)에게 시해 당함

 

- 제32대왕 우왕(禑, 1364~1389) 1374~1388

공민왕의 아들. 10세에 즉위하나 1388년 위화도에서 회군한 이성계에게 폐위됨

 

- 제33대왕 창왕(昌, ?) 1388~1389

우왕(禑王)의 아들, 이성계 등이 우왕을 내쫏은후, 창왕을 내세웠으나 1년만에 강화도로 쫓겨나 10세때 시해됨

 

- 제34대왕 공양왕(恭讓, 1345~1394) 1389~1392

공양왕은 고려 제 34대 왕이자 고려의 마지막 왕이다. 이성계 등의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휘는 요(瑤)이고, 고려20대왕 신종 7세손이다. 또한 아버지는 신종 6세손 정원부원군 균이다. 당시 중국에서는 원(元)나라에서 명(明)나라로 바뀔 때였으므로, 조정에서는 친원파(親元派)와 친명파(親明派)의 대립이 격심했으며, 친명파의 이성계(李成桂)는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 뒤에 창왕(昌王)을 즉위하게 하였으나, 음모를 꾀했다는 이유로 창왕을 폐위시키고, 元의 핏줄이 없는 고려의 왕실 자손을 찾아 이성계에 의해 1389년 공양왕을 즉위시켰다.

 공양왕은 과단성이 부족했고, 정몽주(鄭夢周)등의 구세력(舊勢力)에 이어 새로 실권을 잡은 이성계(李成桂)등의 급진 개혁파에게 권력(權力)을 완전히 빼앗겼다가 덕이 없다하여 폐위되었다.

 이로써 고려왕조는 태조 왕건(太祖 王建)이 세운 지 475년만에 멸망하였다.공양왕은 폐위 후 원주(原主)로 추방되고 공양군(恭讓君)으로 강등되었다가 2년 뒤(1394년, 조선 태조 2년)에 삼척(三陟)에서 살해되었다.

 

관제에 있어서 전리사(典理司)·판도사(判圖司)·예의사(禮儀司)·군부사(軍簿司)·전법사(典法司)·전공사(典工司) 등을 이조·호조·예조·병조·형조·공조의 6조로 개편하고, 첨설직을 폐지하였다. 유학의 진흥을 위하여 개성의 오부와 동북면과 서북면의 부·주에 유학교수관을 두었으며, 과거시험에 무과를 신설하였다. 배불숭유론에 의한 주자가례(朱子家禮)를 시행하고 오교양종(五敎兩宗)을 없애군사에 보충함과 동시에 불사(佛寺)의 재산을 몰수하여 각 관사에 분속시켰다. 1390년(공양왕 2) 도선의 비록에 의해 한양을 천도하여 판삼사사(判三司事) 안종원(安宗源) 등으로 개성을 지키게 하고 백관을 분사(分司)하게 했으나, 이듬해 민심의 동요로 다시 개성으로 환도하였다. 경제면에 있어서는 1391년 광흥창(廣興倉)·풍저창(豊儲倉)을 서강(西江)에 세워 조운의 곡식을 비축하게 했으며, 개성 오부에는 의창(義倉)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조준(趙浚)의 건의로 과전법을 실시하여 녹제와 전제를 개혁, 신흥세력의 경제적 기반을 다지게 하였다. 또한 인물추고도감(人物推考都監)을 두어 노비결송법과 결송법을 정하였다.


 

 

 

조선시대의 연대사

 

 

     왕명      재위
     기간

              약                     

 1  태조(太祖)  1392~1398

휘는 성계(成桂). 고려말 무신으로 왜구를

물리쳐공을 세우고, 1388년 위화도 회군으로

고려를 멸망시키고 92년 조선왕조를 세움.

 2  정종(定宗)  1398~1400 휘는 방과(芳果). 사병을 삼군부에 편입시킴.
즉위 2년만에 방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이 되었음.
 3  태종(太宗)  1400~1418

휘는 방원(芳遠). 태조가 조선을 세우는데
공헌하였으며,
왕자들의 왕위 다툼(왕자의 난)

에서 이겨 왕위에 오름.
여러 가지 정책으로 조선왕조의 기틀을 세움.

 4  세종(世宗)  1418~1450 휘는 도. 태종의 셋째아들. 집현전을 두어 학문을
장려하고,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측우기, 해시계
등의 과학기구를 창제케함. 외치에도 힘을써
북쪽에 사군과 육진, 남쪽에 삼포를 두었음.
 5  문종(文宗)  1450~1452 휘는 향(珦). 학문에 밝고 인품이 좋았으며,
세종의 뒤를 이어 유교적 이상 정치를 베풀고
문화를 발달 시켰음.
 6  단종(端宗)  1452~1455 12살에 왕위에 올랐으나 계유사화로 영월에
유배되었다가 죽임을 당함. 200년후인 숙종때
왕위를 다시 찾아 단종이라 하였음.
 7  세조(世祖)  1455~1468

휘는 유.

국조보감(國朝寶鑑), 경국대전(經國大典)
등을 편찬하고 관제의 개혁으로 괄목할만한

치적을 남김. 수양대군(首陽大君).

 8  예종(睿宗)  1468~1469

휘는 광(胱). 세조의 둘째 아들.

세조때부터 시작한
경국대전을 완성 시켰음.

 9  성종(成宗)  1469~1494 휘는 혈. 학문을 좋아하고 숭유억불, 인재등용 등
조선초기의 문물 제도를 완성함.
경국대전을 편찬함.
 10  연산군
 (燕山君)
 1494~1506

휘는 융.

폭군으로 무오사화,갑자사화,병인사화를
일으켜 많은 선비를 죽임. 중종반정으로 폐위됨.

 11  중종(中宗)  1506~1544 휘는 역. 혁신정치를 기도하였으나 훈구파의
원한으로 실패하고 1519년 기묘사화,
신사사화를 초래함.
 12  인종(仁宗)  1544~1545 장경왕후의 소생.
기묘사화로 없어진 현량과를 부활함.
 13  명종(明宗)  1545~1567 휘는 환. 중종의 둘째 아들. 12세에 즉위하여
을사사화,정미사화,을유사화,을묘왜변을 격음.
 14  선조(宣祖)  1567~1608

명종이 후사없이 승하하자 16세에 즉위.
이이, 이황 등의 인재를 등용하여 선정에

힘썼으나 당쟁과 임진왜란으로 시련을 격음.

 15  광해군
 (光海君)
 1608~1623

휘는 혼. 당쟁으로 임해군, 영창대군을 역모로
죽이고(계축사화), 인목대비를 유폐하는 등

패륜을 많이 저질렀으며 한편 서적편찬 등

내치에 힘쓰고 명나라와 후금에 대한

양면정책으로 난국에 대처함.

인조반정으로 폐위됨.

 16  인조(仁祖)  1623~1649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으나 이괄의 난,
병자호란,정묘호란을 격음.
 17  효종(孝宗)  1649~1659 휘는 호. 인조의 둘째 아들. 병자호란으로 형인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에 볼모로 8년간 잡혀
갔다 돌아와 즉위후 이를 설욕하고자 국력을
양성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함.
 18  현종(顯宗)  1659~1674 휘는 연. 즉위 초부터 남인과 서인의 당쟁에 의해
많은 유신들이 희생됨. 대동법을 전라도에 실시하고, 동철제 활자 10만여 글자를 주조함.
 19  숙종(肅宗)  1674~1720 남인, 서인의 당파싸움(기사사화)과 장희빈으로
인한 내환이 잦음. 대동법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백두산 정계비를 세워 국경을 확정함.
 20  경종(景宗)  1720~1724 휘는 윤. 숙종의 아들로 장희빈 소생.신임사화등
당쟁이 절정에 이름.
 21  영조(英祖)  1724~1776 탕평책을 써서 당쟁을 제거에 힘썼으며,
균역법 시행, 신문고 부활, 동국문헌비고 발간 등
부흥의 기틀을 만듬.
말년에 사도세자의 비극이 벌어짐.
 22  정조(正祖)  1776~1800 휘는 성. 탕평책에 의거하여 인재를 등용하고,
서적보관 및 간행을 위한 규장각을 설치함.
임진자, 정유자 등의 새활자를 만들고 실학을
발전시키는 등 문화적 황금 시대를 이룩함.
 23  순조(純祖)  1800~1834

휘는 공. 김조순(金組淳) 등 안동김씨의

세도정치 시대.

신유사옥을 비롯한 세차레의 천주교
대탄압이 있었음.1811년 홍경래의 난이 일어남.

 24  헌종(憲宗)  1834~1849 휘는 환(奐). 8세에 즉위하여 왕5년에 천주교를
탄압하는 기해사옥이 일어났음.
 25  철종(哲宗)  1849~1863 휘는 변. 헌종이 후사없이 죽자 대왕대비
순원황후의 명으로 즉위함.
왕2년 김문근(金汶根)의 딸을 왕비로 맞아들여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시작됨.진주민란 등
민란이 많았음. 병사함.
 26  고종(高宗)  1863~1907 휘는 희(熙).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
대원군과 민비의 세력다툼, 구미열강의 문호개방
압력에 시달림.
1907년 헤이그 밀사사건으로 퇴위함.
임오군란이일어남.
 27  순종(純宗)  1907~1910 이름은 척(拓). 고종의 둘째 아들.
1910년 일본에 나라를 빼앗겨 35년간 치욕의
일제시대를 보내게됨. 이왕(李王)으로 불림.

 

조선의 연대표

 

1393년 2월 국호를 조선으로 바꿈.

1394년 10월 한양천도(漢陽遷都)

1398년 8월 제1차 왕자의 난 일어남, 정도전, 남은 등 죽임을 당함

1398년 (태조 7)년 9월 태조, 방과(芳果)에게 왕위를 물려줌(定宗)

1400년 (정종 2)년 1월, 제2차 왕자의 난 발생

1400년 11월 정종, 방원(芳遠)에게 왕위를 물려줌(太宗)

1401년 (태종 1)년 7월 신문고(申聞鼓)설치

1406년 (태종 6)년 3월 선교양종이 사사(寺社) 242개만 남기고 나머지는 없앰. 사찰의 토지와 노비를 제한하고, 나머지는 몰수함.

1414년 (태종 14)년 경기좌우도를 경기도로 개편 : 전국 8도 체제가 완성됨.

1416년 (태종 16)년 8월 승려들에게 도첩을 지급함 : (度牒制)

1420년 (세종 2)년 3월 집현전(集賢殿)을 설치함

1425년 (세종 7)년 2월 처음으로 동전을 사용

1425년 4월 저화 사용을 금지하고 동전만 사용하도록 함

1429년 (세종11)년 정초(鄭招), 『농사직설(農事直說)』을 편찬함

1434년 (세종 16)년 6월 장영실(蔣渶實), 자격루(自擊漏 : 물시계. 시간이 되면 종을 침)를 만듦. 이 해, 동북면에 6진(六鎭) 설치

1443년 (세종 25)년 2월 계해조약(癸亥條約)체결 : 통신사(通信使)가 쓰시마 도주와 세견선(歲遣船) 50척으로 정함.

1443년 12월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

1445년 (세종 27)년 4월 정인지(鄭麟趾), 권제(權踶) 등,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10권을 편찬하여 올림.

1446년 (세종 28)년 9월 훈민정음 반포

1447년 (세종 29)년 7월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완성.

이해 안견(安堅)이 「몽유도원도」 그림.

1452년 (문종 2)년 2월 김종서 등 『고려사절요』 편찬 : 연대순으로 정리한 고려 역사책.

5월 단종(端宗) 즉위.

1455년 (단종 3)년 윤6월 단종, 수양대군(世祖)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上王)이 됨.

1456년 (세조 2)년 6월 성삼문, 박팽년 등이 상왕의 복위를 도모하다 처형됨(死六臣).

1457년 (세조 3)년 6월, 단종을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하여 영월에 유배, 10월 영월에서 노산군(단종)사망.

1463년 (세조 9)년 11월 홍문관(弘文館) 설치.

1467년 (세조 13)년 5월 이시애의 난(李施愛亂) 발생.

1468년 (세조 14)년 10월 남이(南怡), 반역죄로 처형됨.

1470년 (성종 1)년 11월 『경국대전(經國大典)』 교정(校訂) 완성됨.

1478년 (성종 9)년 12월 서거정(徐居正), 『동문선(東文選)』을 편찬함.

1482년 (성종 13)년 8월 폐비 윤씨(廢妃 尹氏)에게 사약을 내림.

1498년 (연산군 4)년 7월 무오사화(戊午士禍) 발생, 10월 김종직(金宗直)의 문집을 모아 불태움.

1504년 (연산군 10)년 10월 갑자사화(甲子士禍) 발생.

1506년 (연산군 12)년 9월 중종 반정 : 박원종(朴元宗) 등, 왕을 폐하고(晋城大君)을 왕으로 옹립(中宗). 폐왕을 연산군(燕山君)에 봉함.

1510년 (중종 5)년 4월 삼포왜란(三浦倭亂) 발생.

1512년 (중종 7)년 8월 임신조약(壬申條約) 체결.

1517년 (중종 12)년 6월 축성사(築城司)를 비변사(備邊司)로 개칭.

1517년 12월 기묘사화(己卯士禍) 발생

1519년 (중종 14)년 4월 조광조의 건의에 따라 현량과(賢良科) 실시.

1522년 (중종 17)년 12월 소격서(昭格署)를 설치 : 도교 의식에 따라 하늘에 제사지내는 기관 조광조 등이 소격서는 이단이며, 하늘에 지내는 제사는 천자만 할 수 있다고 주장하여 1518년 폐지. 이때 부활되었다가 선조대에 다시 폐지됨.

1530년 (중종 25)년 8월 이행(李荇),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편찬 : 조선 전기 지리지의 완성본. 백과 사전식으로 지방의 정치,경제,역사,행정,사회,민속,인물 등을 기록했고, 각 도의 지도도 수록함.

1539년 (중종 34)년 4월 영조문(迎詔門)을 영은문(迎恩門)으로 개칭 : 명나라 사신이 머무는 모화관(慕華館) 앞의 문 이름을 명나라가 영은문으로 바꿀 것을 요구. 1896년 사대의 상징이라 하여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움.

1543년 (중종 38)년.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백운동 서원 건립 : 서원(書院)의 시초.

1545년 (인종 1)년 8월 을사사화(乙巳士禍) 발생.

1547년 (명종 2)년 2월 정미약조(丁未約條) 체결.

1550년 (명조 5)년 2월 풍기군수 이황의 요청에 따라 백운동 서원에 소수서원(紹修書院)의 편액이 하사됨

1555년 (명종 10)년 5월 을묘왜변(乙卯倭變) 일어남.

1559년 (명종 14)년 3월 임꺽정의 난(林巨正亂) 발생.

1572년 (선조 5)년 이이와 성흔(成渾) 사이에 사단 칠정(四端七情)에 관한 서신 왕래가 시작됨(-1578)

1575년 (선조 8)년 7월 동서분당(東西分黨).

1580년 (선조 13)년 정철(鄭澈), 「관동별곡(關東別曲)」을 지음.

1589년 (선조 22)년 10월 정여립 모반 사건(鄭汝立謀反事件) 발생.

1590년 (선조 23)년 3월 황윤길(黃允吉), 김성일(金誠一)을 일본에 통신사로 파견. 이 무렵, 동인이 남인(南人)과 북인(北人)으로 나뉨.

1592년 (선조 25)년 4.13일 임진왜란 발발

1592년 4.30일 선조, 한성을 떠나 피난길에 오름.

1592년 5.29일 사천 해전에서 거북선을 처음으로 사용.

1592년 7월 말 곽재우(郭再祐)가 경상도 의령, 현풍, 영산 등지에서 왜군 격파.

1592년 8월 금산 전투에서 조헌과 영규의 의병 전산(七百義塚).

1592년 10월 진주대첩(晉州大捷).

1592년 6월 일본군, 진주성 공격, 논개(論介) 사망.

1593년 (선조 26)년 2월 행주대첩(幸州大捷) : 함경,평안도의 일본군, 한성으로 퇴각.

1594년 (선조 27)년 2월 훈련도감(訓練都監) 설치.

1597년 (선조 30)년 1월 정유재란(丁酉再亂) 발발.

1598년 (선조 31)년 11월 노량 해전 : 이순신 함대, 일본 수군을 대파시킴. 이순신(李舜臣) 전사.

1605년 (선조 38)년 4월 유정(惟政), 일본에서 포로 3000여 명을 데리고 돌아옴.

1607년 (선조 40)년 이 해 허균(許筠)이 『홍길동전』을 지음.

1608년 (선조 41)년 2월 광해군(光海君) 즉위. 이 해 경기도에 대동법(大同法)을 실시함.

1610년 (광해군 2)년 8월 허준(許浚), 『동의보감(東醫寶鑑)』을 완성함.

1618년 (광해군 10)년 1월 인목대비의 호를 삭탈하고 서궁(西宮)이라 칭함.

1619년 (광해군 11)년 3월 명에 보낸 원군 패배, 도원수 강홍립(姜弘立)은 금에 항복.

1623년 (광해군 15)년 3월 인조 반정 발생 : 이귀(李貴)를 비롯한 서인이 광해군(光海君)을 쫓아내고 인조(仁祖)를 추대함.

1626년 12월 병자호란(丙子胡亂) 발발.

1627년 (인조 5)년 1월 정묘호란(丁卯胡亂) 일어남.

1636년 (인조 14)년 2월 후금이 보낸 국서를 받지 않고 거절함.

1652년 (효종 5)년 이 해, 효종의 북벌정책(北伐政策)이 본격적으로 추진됨.

1653년 (효종 4)년 8월 네덜란드인 하멜(Hamel, H) 일행의 제주도 표착이 보고됨 : 1666년 탈출하여 『하멜표류기』를 씀.

1654년 (효종 5)년 3월 제1차 나선정벌(羅禪征伐).

1659년 (효종 10)년 5월 제1차 예송논쟁(禮訟論爭).

1674년 (현종 15)년 2월 제2차 예송논쟁(禮訟論爭).

1680년 (숙종 6)년 4월 경신환국(庚申換局) : 남인이 쫓겨나고 서인이 정권을 장악.

1683년 (숙종 9)년 4월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나뉨.

1689년 1689(숙종 15)년 2월 기사환국(己巳換局) : 세자책봉문제로 노론 실각, 남인 집권.



1689년 6월 송시열(宋時烈), 사약을 받음.

1693년 (숙종 19)년 이 해 안용복(安龍福)이 독도에서 일본인을 쫓아 내고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일본에 확인시킴.

1694년 (숙종 20)년 3월 갑술옥사(甲戌獄事) : 노론이 정권을 잡고 남인은 몰락함.

1701년 (숙종 27)년 10월 장희빈(張禧嬪), 사약을 받음.

1712년 (숙종 38)년 5월 백두산 정계비(白頭山定界碑)를 세움.

1725년 (영조 1)년 1월 탕평책 실시

1728년 (영조 4)년 3월 이인좌의 난(李麟佐亂) 발생.

1741년 (영조 17)년 9월 난전(亂廛)을 엄히 금지함.

1750년 (영조 26)년 7월 균역법(均役法) 실시함.

1760년 (영조 36)년 6월 『일성록(日省錄)』 기록 시작(-1910) : 국왕의 언행과 정사를 기록한 책. 세손인 정조가 일기를 쓰면서 시작. 정조 즉위후 정부의 공식문서로 기록됨.

1762년 (영조 38)년 윤5월 사도세자(思悼世子), 뒤주 속에 갇혀 죽음.

1770년 (영조 46)년 8월 『동국문헌비고』 완성 : 정치, 경제, 문화 등 각종 제도와 문물을 분류하여 설명한 책.

1776년 (영조 52)년 3월 정조(正祖)즉위.

1776년 7월 홍국영(洪國禜), 도승지로서 세도를 부림.

1776년 9월 규장각(奎章閣) 설치.

1783년 (정조 7)년. 이 무렵. 박지원(朴趾源)이 『열하일기(熱河日記)』를 지음.

1790년 (정조 14)년. 안정복(安鼎福), 『동사강목(東史綱目)』을 지음

1791년 (정조 15)년 2월, 신해통공(辛亥通共) : 금난전권을 폐지함.

1797년 (정조 21)년 이긍익(李肯翊,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편찬 : 조선태조부터 숙종대까지의 야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역사책.



1801년 (순조 1)년 9월 황사영 백서 사건(黃嗣永 帛書 事件) 일어남.

1805년 (순조 5)년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勢道政治) 시작.

1811년 (순조 12)년 12월 평안도 농민전쟁(平安道 農民戰爭) 일어남.

1814년 (순조 13)년 제주도에서 민란 일어남.

1817년 (순조 17)년 김정희, 북한산비가 진흥왕 순수비임을 밝힘.

1831년 (순조 31)년 9월 로마 교황청이 천주교 조선 교구를 설치함.

1840년 (헌종 6)년 12월 왕대비, 수렴청정을 거둠. 풍양 조씨의 세도정치가 시작됨.

1846년 (헌종 12)년 7월 김대건(金大建), 순교함.

1848년 (헌종 14)년 이양선(異樣船)이 경상, 전라, 황해, 강원, 함경 등지에 계속 나타남.

1861년 (철종 12)년 김정호(金正浩),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를 간행함.

1862년 (철종 13)년 2월 진주 민란 일어남.

1863년 (철종 14)년 11월 동학교주 최제우(崔濟愚) 체포됨.

1863년 12월 고종(高宗)즉위 :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이 정권을 장악.

1864년 (고종 1)년 3월 동학교주 최제우(崔濟愚), 대구에서 사형당함.

1864년 4월 서원, 향현사(鄕賢祠) 등에 토지와 재산을 보고하도록 명령 : 대원군의 서원 철폐 정책 시작.

1865년 (고종 2)년 4월 경복궁 중건(景福宮重建)을 지시.

1866년 (고종 3)년 1월 병인박해 시작(-3월) : 남종삼(南鐘三) 등 천주교 신자 몇천명과 프랑스인 베르뉘를 비롯한 9명의 선교사를 처형하고 천주교 서적과 판목(版木)을 불태움.

1866년 3월 민치록(憫致祿)의 딸을 왕비로 정함(憫妃).

1866년 7월 제너럴 셔먼호 사건(General Sherman) 발생.

1866년 9월 병인양요(丙寅洋擾) 발생.

1866년 7월 고종, 경복궁으로 옮김.

1868년 (고종 5)년 4월 남연군묘(南延君墓) 도굴 사건 발생.

1871년 (고종 8)년 신미양요(辛未洋擾) 발생.

1873년 (고종 10)년 최익현, 대원군을 탄핵한 뒤 제주도에 유배됨. 고종, 친정(親政)을 선포. 민씨 일파의 세도 정치 시작됨.

1875년 (고종 12)년 운요호사건 발생.

1876년 (고종 13)년 1.17-19 강화에서 조일 수호 회담 열림.

1876년 4. 4 일본에 수신사(修信使) 파견 : 김기수를 단장으로 76명이 일본의 관청과 공장을 비롯한 문물을 시찰.

1879년 (고종 16)년 12월, 지석영(池錫永)이 충주 덕산에서 처음으로 40여명에게 종두법 실시.

1880년 (고종 17)년 8.28 김홍집(金弘集) 청의 황준헌이 저술한 『사의조선책략(私擬朝鮮策略)』을 왕에게 바침.

이 해 최시형의 『동경대전(東經大全)』이 간행됨.

1881년 (고종 18)년 4.10 신사유람담(紳士遊覽團) 파견.

1881년 6월 최시형 『용담유사(龍潭遺詞)』간행.

1882년 (고종 19)년 4.6 조.미 수호통상조약 조언.

1882년 6.9 임오군란(壬午軍亂) 발생.

1882년 7.17 제물포조약(濟物浦條約) 체결됨.

1882년 8.1 민비 환궁.

1882년 8월 박영효가 일본으로 가는 배 안에서 태극기 고안(1883.1.27, 국기로 공식인정)

1882년 10월 조.중 상민수륙무역장정(朝中商民水陸貿易章程) 조인.

1882년 12.5 독일인으로 텐진 주재 독일 영사를 지낸 묄렌도르프(Mollendorff. P.G.von)를 외교 및 재정 고문으로 초빙.

1883년 (고종 20)년 10.1 박문국, 한성순보(漢城旬報) 발간.

1884년 (고종 21)년 10.7 갑신정변(甲申政變) 발발.

1884년 10.24 김옥균을 비롯한 갑신정변 주모자들이 일본으로 망명.

1885년 (고종 22)년 2.19 미국 선교 의사 알렌(Alen. H.N.)세브란스 병원의 전신인 광혜원(廣惠院)설립.

1885년 3.1 거문도 사건(巨文島事件) 발발.

1885년 8.3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Appenxeller, H.G)가 최초의 근대식 중고등 교육 기관인 배재학당 설립.

1886년 (고종 23)년 4.28 이화학당(梨花學堂) 설립.

1889년 (고종 26)년 9.14 함경도 감사 조병식(趙秉式)이 함경도에 방곡령(防穀令) 실시.

1892년 (고종 29)년 11.1 동학교도 삼례 집회(參禮集會)를 개최.

1893년 (고종 30)년 3.11 동학교도 보은 집회(報恩集會)를 개최.

1894년 (고종 31)년 1.10 갑오농민전쟁(甲午農民戰爭) 발발. 고부관아 점령.

1894년 3.21 농민군, 고부 백산에서 봉기.

1894년 4.6-7 농민군, 황토현에서 관군과 보부상의 연합부대를 물리침.

1894년 6.8-9 일본측, 조선에 내정 개혁 강요.

1894년 6.25 갑오개혁(甲午改革) 시작.

1894년 6-7월 농민군 집강소(執綱所)를 설치하고 폐정 개혁안(廢政改革案)을 실시.

1894년 9.13 농민군 2차 봉기(農民軍二次蜂起).

1894년 11.28 전봉준(全琫準), 전라도 순창에서 체포됨.

1895년 (고종 32)년 4.1 유길준(兪吉濬), 『서유견문록(西遊見聞)』간행.

1895년 8.20 을미사변(乙未事變) : 명성황후(明星皇后) 죽음.

1895년 11.15 단발령(斷髮令)을 내림.

1896년 (고종 33)년 1월 각지에서 을미의병(乙未義兵) 봉기.

1896년 2.11 아관파천(俄館播遷) 발생.

1896년 4.7 독립신문(獨立新聞) 창간 : 발행인 서재필(徐載弼).

1897년 (고종 34)년 8.14 연호 광무(光武)로 고침.

1897년 10.11 국호를 대한제국(大韓帝國)으로 결정.

1897년 12.24 손병희 동학 3대 교주가 됨.

1898년 (고종 35)년 2.22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죽음

1898년 3.10 독립협회, 서울 종로에서 대중정치 집회인 만민 공동회 개최 : 열강의 이권침탈 철회를 주장.

1898년 4.9 배재 학당 협성회가 최초의 일간 신문인 <매일신문> 창간.

1898년 5.29 서울 종현(鐘峴) 성당(현재의 명동 성당)준공.

1898년 9.5 장지연, 남구억이 <황성신문>을 발행.

1898년 10.29 독립협회, 만민공동회 개최 : ‘헌의 6조(獻議六條)’를 올림.

1898년 11.4 정부, 독립협회의 해산과 주요 인물 검거를 명령함.

1898년 12.25 정부, 군대를 동원하여 만민 공동회(萬民共同會)를 해산.

1899년 (고종 36)년 12.4 <독립신문> 폐간.

1901년 (고종 38)년 5.28 제주도 대정군에서 이재수의 난(李在守亂) 발생.

1901년 8월 국가(國歌) 재정 : 독일인 에케르트 작곡.

1901년 11.16 목포 부두 노동자 동맹 파업.

1903년 (고종 40)년 5.25 용암포 사건(龍巖浦事件) 발생.

1904년 (고종 41)년 2.23 한.일의정서(韓日議定書)체결.

1904년 9월 송병준의 일진회와 이용구의 진보회가 일진회(一進會)로 통합됨.

1905년 (고종 42)년 7.29 가쓰라.태프트 밀약 성립.

1905년 8.12 제2차 영일동맹

1905년 9.5 포츠머드 강화 조약

1905년 11.17 을사조약(乙巳條約) 체결.

1905년 11.20 장지연이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 발표.

1905년 11.30 시종무관장 민영환, 을사조약에 반대하여 자결.

1906년 (고종 43)년 2.1 일제에 의한 통감부(統監府) 설치.

1906년 7.22 이인직(李人稙), 신소설 『혈의 누』를 만세보에 연재하기 시작 : 최초의 신소설. 일본 작품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음.

1907년 (고종 44)년 1.29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 시작됨.

1907년 4월 고종, 헤이그 밀사 파견.

1907년 7.16 이완용, 송병준이 헤이그 밀사 파견을 이유로 고종에게 퇴위를 강요.

1907년 7.20 순종(純宗) 즉위.

1907년 7.24 한일 신협약(韓日新協約) : 정미7조약 체결

1907년 8월 전국 각지에서 항일의병봉기 : 정미의병(丁未義兵).

1907년 11.29 신민회(新民會) 설립.

1907년 12.6 13도 창의군(十三道倡義軍) 결성.

1908년 (고종 45)년 3.23 전명운, 장인환 스트븐스 저격.

1908년 11.1 최남선, 최초의 월간 종합지 『소년』 창간 : 최초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 발표.

1908년 12.28 동양척식주식회사 설립.

1909년 (고종 46)년 10.26 안중근(安重根) 이토 히로부미 사살.

1910년 (고종 47)년 4.15. 주시경(周時經) 『국어문법』간행.

1910년 4월 이시영, 이동녕, 양기탁이 서간도 요령성 삼원보에 독립 운동을 위한 자치 기관인 경학사(耕學社)와 군사교육기관 신흥강습소 설치.

1910년 8.29 한일 합병조약 공포됨. 총리대신 이완용이 통감 테라우치 마사타케와 한국 통치권을 일본 왕에게 양도하는 문서에 서명함.

1910년 9.10 황현(黃玹) 자결함.

1910년 9.1 <황성신문>, <대한민보> 폐간됨. : <대한매일신보>는 <매일신보>로 고쳐 총독부 기관지로 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