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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자료

30. 보통의 존재/ 이석원지음/ 달

30. 보통의 존재/ 이석원지음/ 달

 

이 책은 회사 사무실 대여 책장에서 빌려보았다.

철저히 보통 사람의 내면과 일상을 너무도 잘 표현한 내용들로 가득하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인생에 있어서 거대한 상투적인 주제들까지 하나도 지나치지 않고 쉽게 파고 들어가 평범한 생의 아름다움을 찾아 너무도 쉽게 표현하였다. 고통과 불행이 잇따르고, 영원한 사랑이 존재하는 것도 아닌 생에서 아름다움은 항상 존재함을 읽케워 주고. 사람이 아무리 뛰어난들 자연과 우주 속에서 그리고 신 앞에서는 미약하고 보통의 존재에 불과할 것임을 알고있기에 보통의 존재라는 사실만으로 아름답고 고귀함을 느끼게하는 너무나 공감이가는 산문집이다.

특히 비전을 가지고 살아야한다는 요즘 현대인들의 아우성 속에 어떤 꿈을 꾸어야 좋을지 모르는 보통사람들의 사고 방식을 너무도 솔직히 표현한 대목은 나 역시 보통사람임을 절감케했다.

나 홀로 가지고 있는 특별함인줄 알았던 그것이 알고 보니 모두 다 가지고 있던 별로 특별하지 않은 것이라는 사실도 알았고, 보통사람들의 생각하는 존재 의식을 한줄 한줄 공감가며 술술 읽히는 문장을 대할 때 마다 작가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책 내용 중에서-

 

사랑이 뭘까. 마음은 왜 변할까.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도 그 애를 생각하면 문정동 어느 작은 공원 문 앞에 걸터앉은 채 책을 읽으며 나를 기다리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사랑한 그녀의 전부였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연민이건 뭐건 상관없다. 설사 그게 사랑이 아니라 해도 사랑보다 중요하지 않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 ‘아름다운 것’ 중에서 -

 

저는 사랑과 생명에 끝이 있다는 것에 찬성하는 편입니다. 그 필요성에 대해서도 공감하구요. 적어도 이성적으로는. 나의 삶은 38년간 무기력함에 시달리다가 마흔을 앞두었다는 시기적 절박감과 마침 무너졌던 건강 덕분에 생의 유한함을 절실히 목도한 후 비로소 삶에 생명력과 애착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일생토록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다가 그제서야 하고 싶은 게 생겨나더군요.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에 끝이 없다면 과연 지금 이 사람에게 최선을 다할 수 있을까. 이런 간절함이 생겨날 수 있을까. 아니겠지요. 아닐 겁니다. 나의 이 간절함의 힘이 끝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 슬프긴 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동력인 것만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 ‘해파리’ 중에서 -

 

누구든 창작자라면 창조는 천재성이 아닌 고통에서 더 많은 것이 비롯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평탄한 삶을 살아온 사람은 좋은 작품을 내기가 힘들다. 인생의 굴곡이 험준할수록 작품에도 그만큼 진한 드라마가 담기기 마련이니까. 잘 아는 음악 하는 동생은 아버지에게 전화를 해서 왜 그렇게 우리를 행복하게 키웠냐고 반 농담 투정을 부린다고 한다. 자기들은 아무리 음악을 짜내도 안 된다면서. - ‘고통이 나에게 준 것’ 중에서 -

 

끝의 덧없음을 깨닫지 않으리. 힘들더라도 나는 다만 최선을 다해 끝과 마주하고 싶을 뿐. - ‘여행의 시작’ 중에서 -

 

오늘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 가족 중에 암에 걸린 사람이 없는 것, 빚쟁이들의 빚 독촉 받을 일이 없는 것, 먹고 싶은 라면을 지금 내 손으로 끓여먹을 수 있다는 하찮은 것들뿐이라 해도 누가 뭐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러한 행복의 크기가 결코 작은 것 또한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만약 체념에서 비롯된 행복이라면, 더 많은 것을 갖고 싶고, 하고 싶은데 그 모든 욕망들을 어쩔 수 없이 꾹꾹 누르고,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많은 영화에 일찌감치 백기를 든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라면 그건 자신에 대한 기만이 아닐까.

- ‘어느 보통의 존재’ 중에서 -

 

장례를 마친 후 집에 있자니 너무 쓸쓸하고 마음이 고통스러웠다. 그래 누나들에게 이렇게 영원히 슬프면 우울해서 어떻게 사냐고 진심으로 걱정이 돼서 물어보니 다들 대수롭지 않다는 듯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하는 게 아닌가. 난 너무 슬퍼서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는데 한 일주일인가 지나니 마치 거짓말처럼 감정이 스르륵 페이드아웃 되는 걸 경험했을 때, 그때의 그 황당한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마치 슬픔이 무슨 물체라도 되어서 누가 그걸 갖다 줬다가 도로 가지고 간 것만 같은 그런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 ‘죽음에 관한 상상’ 중에서 -

 

로망이란 어쩌면 단지 꿈꾸는 단계에서만 아름답고 행복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토록 바라던 많은 것들이 실제로 내 것이 되었을 때, 상상하던 만큼의 감흥을 얻었던 적은 별로 없었으니까.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서점에서 공연을 해보겠다던 꿈도 몇 번씩이나 이뤄봤지만 다른 공연들과 별반 감흥이 달랐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중요한 건 이루어낸 로망 보다는 아직 이루지 못한 로망이 얼마나 남아 있는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꿈을 품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일 것이다. - ‘로망’ 중에서-

 

살면서 말 한마디 해본 적 없이 그저 먼발치서 본 인상만 가지고 ‘저 사람은 이런 사람일 것이다’라고 단정 지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말이다. 그렇게 성급히 내려진 결론들은 실제 그 사람과 접해보고 나면 늘 수정되기 일쑤였다. 이처럼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찰나의 이미지만으로 한 사람을 평가하고 규정짓는 우를 범할 때가 많다. 그리고 나야말로 그런 방식의 오랜 희생자였다.

 - ‘두 얼굴의 사나이’ 중에서 -

 

이 사랑의 묘약의 효능은 다음과 같다. 이 약을 먹음으로써 사랑하는 마음의 지속기간의 연장, 권태의 방지, 타인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게 되는 효과 등. 복용을 중단하지만 않는다면 거의 영원한 사랑을 할 수 있게 되는 실로 기적의 명약이라 하겠다. 이 약의 원리는 수면내시경의 그것과 흡사하다. 즉, 수면내시경이라는 것이 고통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기억을 없애주어 몇 번이고 그 무시무시한 내시경 검사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듯 이 사랑의 묘약을 먹으면 자신이 얼마나 오랫동안 상대를 사랑해 왔는지를 잊게 만듦으로써 늘 새로운 사랑이 가능할 수 있게 된다는 원리다. 장담하지만 이 약이 개발되는 날엔 인류 역사가 바뀔지도 모른다. - ‘과학자들에게’ 중에서

 

누가 그런다. 내가 마음을 열면 상대는 항상 달아나더라고. 난 그런 이들에게 묻고 싶다. 그렇다면 세상이 문제일까 당신이 문제일까.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여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못한다. 그렇다. 내가 늘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 것도, 그 사람들이 늘 내게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모두 내 탓이다. 내가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 사람들도 변하지 않는 것이다. 연애는 패턴이다. 그리고 그 패턴은 다 내가 만드는 것이다. 내가 바뀌면 패턴도 바꿀 수 있다. 쉽진 않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 ‘연애는 패턴이다’ 중에서

 

늙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나이를 먹으면 많은 욕구들이 사그라들어 젊어서는 가져보지 못한 안정감을 갖게되는데 그 욕구라는 것이 왜 사그라드는가를 생각해보면 또 서글프다. 젊어 생리적으로 왕성히 생성되던 호르몬이 줄어든 탓에 성욕을 비롯한 다른 많은 욕구들이 동반하여 줄어들고, 따라서 젊은 활기를 잃어버린 대가로 화분을 가꾸거나 읽지 않던 책에 손이 가곤하는 것이다. 물론 나는 이미 그 시기에 들어선 사람으로서 그 안정감이 주는 장점과 위력을 잘 알고 있다. 다만 그 시기가 너무 빨리 온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