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남미 어딘가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있었다. 나는 책상위에서 조용히 그의 여행길을 따라갔다. 함께 숨쉬고 느끼고 울고 웃으며 내 안에 작은 변화의 바람이 일렁이고 있음이 느껴졌다. 587일 간의 여행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왔을때 나의 여행도 끝이 났다.
이 프로젝트를 계획하며 인터뷰이 리스트 맨 위에 그의 이름을 적었다. 인생의 여러 물음들 중 그가 여행을 통해 얻은 답은 무엇인지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2012년 12월, 한해의 끝자락에 우리는 만났고 그에게서 혼자서는 도저히 풀수 없었던 물음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은 살면서 무수히 마주하고 있지만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만남과 헤어짐에 관한 것이었다. 답은 이 글의 끝에 있다.
- 587일 동안 28개국을 여행하고 돌아왔어요. 처음 세계여행을 떠나게 된 계기는 뭔가요?
“엄청난 포부가 있을 거라는 오해를 간혹 하는데 대통령이 될 거야 과학자가 될 거야 라고 말하는 것처럼 어릴 때부터 막연한 꿈이었어요. 고등학생 때까지는 은퇴하고 여유 있을 때나 떠날 수 있는 미지의 여행이라고 생각했죠. 대학생이 되고 난 후 국내 여행을 많이 다녔어요. 자전거여행, 산악, 캠핑, 대장정 등 다양한 형태의 여행을 경험해보았죠. 그러면서 자전거와 캠핑을 이용한다면 조금의 노력과 준비로도 당장 세계여행을 떠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꼭 나이 들어서가 아니라 지금 당장 실행할 수 있는 지극히 현실적인 여행이라는 확신이 들어서 바로 실천에 옮겼어요."
▲ 세계일주 준비 지도
- 저도 23살 때쯤 세계여행을 꿈꾼 적이 있어요. 여행 정보를 찾아보며 하나씩 걸리는 게 생기더라고요. 돈, 영어, 여자인 것, 취업이 늦어지는 점 등등. 그러면서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준비하다 말아버렸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 같아요. 누구나 세계여행을 꿈꾸지만 벽을 만나면 확 놓아버리죠. 그런데 태환군은 그렇지 않았어요.
"세계일주와 전국일주는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시간과 자금, 호기심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라 생각했죠. 떠날 수 있었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소문을 많이 내고 다녔기 때문인 것 같아요. 많이 떠벌려놓으면 부끄러워서라도 가게 되거든요. 하하하. 그래서 술자리에서 항상 이야기했고 미니홈피 대문에도 크게 적어놓았어요.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럽게 배태환은 세계여행을 갈 사람이라고 기정사실화 되더군요. 부모님을 설득할 일도 별로 없었어요. 당장 내일 저 떠납니다! 가 아니라 저는 2년 뒤에 세계여행을 갈 겁니다! 라고 말했으니까요. 사실 2년 뒤 갈 여행을 당장 가지 마라 죽일 듯 반대하지는 않잖아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니 세계여행을 떠나는 날이 다가왔고 이제와 반대하실 수 없었던 거죠."
- 하하하. 2년 동안 세뇌시켰군요. 첫 번째 인터뷰이가 했던 말과 비슷하네요. 말의 힘.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여기저기 끊임없이 말하고 다녀야 하나 봐요. 마음속에만 품고 있으면 도중에 그만두더라도 쪽 팔릴 일이 없으니 혼자 말아버리면 그만이게 되죠.
"맞아요. 그리고 친구들의 역할도 중요한 것 같아요. 많은 친구들이 당연히 갈 거라고 믿고 응원해주었기 때문에 준비를 하면서 의지가 꺾일 일이 없었어요. 불확실한 미래를 계획해가는 과정에서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해 준 친구들에게 고마워요.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청춘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거에요. 실패한다 하더라도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으니까요. 만약 서른이었다면 다른 생각이 들었을 지도 몰라요. 그런 거 보면 큰 결심은 일찍 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이 글을 읽게 될 많은 청춘들에게,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미래의 계획을 하루라도 빨리 끌어당겨 지금 당장 시도하는 것이 성공의 가능성을 높여줄 수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나이라는 건 경험이 될 수도 있지만 짐도 되잖아요."
- 준비과정이 인상 깊어요. 자신의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면서 나는 이러한 장점을 가지고 있으니 떠나도 되겠다 확신을 갖고, 단점에 대해서는 이렇게 채워가야겠다 계획을 짜고, 그대로 실천해가는 모습이 멋있었어요.
"물론 계획을 하고 실천한 것도 있지만 다 하진 못했어요. 하지만 블로그에 그렇게 적어 놓지 않았더라면 아마 더 많이 못했을 거예요. 블로그에 적어놓는 것도 어찌 보면 사람들에게 떠벌리는 효과를 주니까 부끄러워서라도 준비하게 되죠. 준비과정의 대부분은 경비를 모으는 일에 투자됐어요."
- 경비는 얼마나 들었나요?
"총 경비는 2000~2100만원 정도 들었어요."
- 그 돈은 미리 다 모아서 간 건가요?
"총 소요된 게 2000~2100만원이었고 800만원을 모아갔어요. 학생이다 보니 학교를 다니며 돈을 모으는 일이 쉽지 않더라고요. 버는 족족 통장에 넣었지만 당시 동아리 회장이었기 때문에 돈 쓸 일이 계속해서 생겼거든요.
부족한 돈은 여행하면서 쓴 여행기 원고료로 메꾸기도 하고 후원도 받았어요. 대학교에서 산악회 활동을 하고 있는데 등산경비를 후원 해줬어요. 대륙 별 최고봉을 오르는 거라 한번 산에 오르는데 100만원 가까이 들거든요. 아프리카 여행할 때는 여행사에서 후원을 해줬고. 알래스카에서는 호두과자 장사를 했는데 그때 3000불을 벌었어요. 거기서 귀국 비행기 값과 귀국 후 한국에서 생활할 자금을 벌어왔죠. 지금 그 돈으로 생활하고 있는 중이에요. 하하하. 그래도 부족한 부분은 부모님께 도움을 받았어요.
사실 돈 이외의 다른 것들을 준비하는 데는 한 달도 걸리지 않아요. 정보 검색, 장비 구입 등은 금방 할 수 있어요. 경비마련에 1년의 시간을 거의 다 썼다고 보면 되죠. 아까도 말했지만 세계일주와 전국일주는 똑같아요. 전국일주를 떠날 때 필요한 장비 외에 호환도구만 하나 더 가져가면 되거든요."
▲ 캠핑 장비
▲ 전자제품과 잡동사니
- 산악회 활동을 통해 체력적인 부분이나 캠핑 노하우는 이미 갖춰져 있었던 거군요.
"그렇긴 하지만 캠핑은 2,3일만 해보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자전거 같은 경우는 싸이클을 하러 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산책한다 생각하고 편하게 라이딩을 했고요. 물론 기본적인 지식, 돌발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은 갖추고 가야죠. 중요한 건 호기심과 관심이에요. 호기심과 관심만 있으면 복잡한 일들도 즐거워져요.
자전거와 캠핑으로 여행하면 좋은 점이 숙소의 제약이 없다는 거에요. 버스여행을 하게 되면 숙소를 무조건 찾아가야 잠을 잘 수 있는데 자전거와 캠핑으로 여행을 하게 되면 정말 아무데서나 잘 수 있거든요."
(그는 정말로 아무데서나 잤다....)
▲ 마을 언저리 숲 속
▲ 풀밭 위..
▲ 다리 밑...
▲ 빈 공장....
▲ 빈 오두막.....
▲ 용도도 알 수 없는 어떤 곳......
▲ 폐가.......
▲ 주인 없는 캠핑장........
▲ 어느 날은 일어나보니 이렇게 서리가 내려있기도..............
- 자전거 여행은 여자라도 가능 할 것 같은데 캠핑은 아무래도 무리에요. 여자는 어쩔 수 없이 제약이 많이 따를 수 밖에 없잖아요. 혼자 세계여행을 떠나려는 여성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나 당부사항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아프리카에 머물면서 1년 가까이 혼자 자전거 여행을 하고 계신 일본인 여자 여행자를 만난 적이 있어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편견을 가지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런 분들을 보면 일단 걱정부터 드는 게 사실이에요. 하루는 여자 혼자 하는 여행이 위험하진 않은지 물어봤어요. 그분이 대답하더라고요. “걱정하지마. 세상엔 착한 사람이 훨씬 더 많아.” 생각해 보니 친구들이 걱정하며 제게 이런 질문을 할 때마다 저도 같은 대답으로 친구들을 안심시켰더라고요. “걱정하지마. 세상엔 착한 사람이 훨씬 더 많아.”
이런 마음이면 떠나도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것을 얻고 무탈하게 한국에 돌아 올 거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어요. 그렇다면 가도 돼요. 하지만 만약에 무슨 사단이라도 나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이 조금이라도 앞선다면 떠나면 안돼요. 뭐랄까, 정말 말하는 대로 된다고 그런 힘이 있어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세상의 뭔가가 있어요."
- 각 대륙마다 한 나라에서 장기체류를 했어요. 머무는 여행이 주는 매력은 무엇인가요?
"아프리카에서는 케냐에 머물면서 치보티랑 젬베를 배웠고 남미에서는 아르헨티나에서 두 달 정도 머물면서 탱고를 배웠어요. 그리고 북미에서는 알래스카에서 3개월 정도 머물면서 호두과자 장사를 했죠. 돌아다니는 여행도 재미있지만 머무는 여행은 그만의 또 다른 매력이 있어요. 남미에서는 베소라는 볼 인사를 해요. 베소는 그들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인사법이죠. 아르헨티나에서 탱고를 배우는 동안에는 저 역시 같이 배우는 사람들과 거리낌없이 베소를 했어요. 그런데 아르헨티나를 떠나면서부터 베소를 할 기회가 한번도 없는 거예요. 머무는 동안에는 특별할 게 없던 베소였는데 다시 또 떠도는 여행을 시작하니 베소가 특별한 것이 되는 거죠. 머무는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그들의 일상이 곧 저의 일상이 돼요."
▲ 아프리카 케냐에서 배운 젬베
▲ 남미 아르헨티나에서 배운 탱고
- 우리는 그 당시 본 그 모습이 전부라고 생각하잖아요. 만약 날씨가 굉장히 좋지 않은 날 어딘가를 가서 엄청 고생을 하고 그 기억이 너무 안 좋았다면 저는 친구들한테 "야 거기 별로야. 가지마" 라고 말을 하겠죠. 숨겨져 있는 진짜 아름다움은 보지도 못했으면서. 진정한 감상은 오래도록 머물고 난 후 내릴 수 있는 것 같아요.
"맞아요. 풍경이든 사람이든 오래 봐야 알 수 있죠. 오래 봐야 깊게 느낄 수 있어요."
- 여행 중 만난 친구들에게 선물로 장명루를 만들어 주었어요. 장명루는 어떻게 생각하게 되었죠? 사람들 반응은 어떻던가요?
"한창 여행 준비를 하던 때 우연히 친구가 오색실 팔찌를 하고 있는걸 봤어요. 친구에게 물어보니 액운을 물리쳐준다는 의미가 있는 팔찌라고 하더라고요. 단오 풍습 중에 장명루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바로 이거다 싶었죠. 의미도 있으면서 한국의 문화를 알릴 수도 있고 부피는 적게 들면서 많이 만들 수 있어 효율적이고. 제가 생각해도 기발한 아이디어였던 것 같아요.
그냥 팔찌가 아니라 의미가 들어간 팔찌여서 그런지 사람들 반응이 대단했어요. 영어가 짧아 자세하게 설명하진 못했지만 “너의 건강과 행운을 위한 거야. 액운을 물리쳐 줄 거야.” 라는 설명만으로도 굉장히 좋아하더라고요."
▲ 장명루의 재료인 오색실
- 장명루를 볼 때마다 사람들은 태환씨를 생각할거에요. 말로 표현하는 것도 좋지만 그렇게 보여지는 실체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도 필요한 것 같아요.
사실 이런 질문은 의미가 없을 것 같긴 한데, 가장 기억에 남는 나라나 풍경은 어디인가요? 기억에 남지 않는 곳이 없겠지만 그 중 꼭 추천해주고 싶은 곳이 있다면?
"각기 다른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에 단 하나만 고르는 건 정말 어려워요. 저는 캠핑을 했기 때문에 음식을 직접 해먹어야 했어요. 저에겐 세계 곳곳의 풍경이 모두 식당이고 식탁이었죠. 아침식당은 일출이 떠오르는 지중해였고 점심식당은 역사적 의미가 있는 프랑스의 퐁듀갸르 수로였고 저녁식당은 별과 달이 반짝이는 어느 시골마을의 호숫가였죠. 어디든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었어요.
▲ 아침식당은 일출이 떠오르는 지중해요
▲ 점심식당은 프랑스의 퐁듀갸르 수로이며
▲ 저녁식당은 별과 달이 반짝이는 어느 시골마을의 호숫가이로다
그래도 굳이 한곳을 꼽자면 남미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이미 사진으로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고 갔는데도 실제로 보니 꿈만 같았죠. 지구 어딘가에서 그런 자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어요. 지평선까지 소금 층이 깔리고 호수가 생기고 그곳에 하늘이 비치고 마침 그곳이 해발 2000미터여서 뭉게구름이 그 높은 곳에 있고 푸른 하늘과 구름의 조화가 이루어지는데, 신비롭고 환상적이었죠. 나중에 가족들과 꼭 다시 가보고 싶어요.
▲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 1
▲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 2
그리고 세계여행을 하며 대륙 별 최고봉을 모두 올라갔어요. 아프리카에서는 킬리만자로, 남미에서는 아콩카구아, 북미에서는 맥킨리 등등. 산 얘기만 따로 해도 할 얘기가 어마어마해요. 맥킨리 때는 함께 간 사람 한 명이 고산증이 와서 정상을 못 올라가는 상황이었는데 그럴 때 누군가 남아서 케어를 해드려야 해요. 그때 제가 남기로 했죠. 산악인들은 정상에 대한 열망이 엄청나기 때문에 사실 자진해서 남겠다고 했지만 아쉬움에 잠도 제대로 못 잤어요. 하하하."
▲ 남미 최고봉 아콩카구아 정상
- 다음엔 꼭 정상에 오르길 바랄게요. 여행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을 텐데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흠. 뜻밖에도 중간에 함께 여행했던 학교 산악부 선배 형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사람들이 흔히 여행을 인생에 비유하곤 해요. 혼자 여행을 하다 보니 혼자 하는 삶에 익숙해져 갔죠. 조금씩 이기적이고 개인적으로 변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됐어요. 슬슬 함께 하는 여행을 경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선배와 일정이 맞아 5,6개월 정도 함께 여행을 하게 됐어요. 선배와 함께 하면 절대로 트러블이 생기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죠. 그런데 절대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트러블이 생기더라고요.
여행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는 일상에서 이미 알고 있던 것들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보여져요. 좋다고 생각했던 게 나쁘게 보이기도 하고 나쁘게 보였던 것이 좋게 보이기도 하고 나도 몰랐던 또 다른 내 모습이 나타나기도 하죠. 관점이란 환경에 따라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느꼈어요. 그러면서 많은 것에 유연해졌죠. 돌이켜보면 5,6개월의 시간 동안 타인과 함께 하고 갈등을 풀어나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잔디밭에 엎드려 함께 일기를 쓰고 있는 두사람
- 외국인들 중에 생각나는 사람은 없나요? 여행을 하면서 외국인이기 때문에 우리의 정서와는 다르게 그들만의 문화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며 느낀 점이 많았을 것 같아요.
"프랑스에서 자전거 여행을 처음 시작할 때 만난 독일인 할아버지가 생각나요. 그 분은 고등학교 교사셨는데 정년퇴직 후 자전거 여행을 하고 계셨어요. 이제는 점점 변해가긴 하지만 한국에서는 자식들을 위해 은퇴 후 삶까지 포기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은퇴를 하고 나서도 자신이 하고 싶은 취미생활을 하고 열정을 가지고 삶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행 시작할 때 많이 자극이 됐어요.
사람도 사람이지만 프랑스의 생활방식이 기억에 남아요. 6시가 되면 모든 가게가 문을 닫고 여가생활을 즐기더라고요. 간혹 문을 여는 몇몇 PUB이 있긴 하지만. 처음엔 밤에도 놀고 싶거나 물건을 사고 싶은 사람들은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생각을 해보니 만약 한 곳이라도 문을 여는 가게가 있으면 문제가 되는데 모든 가게가 문을 닫으면 문제가 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차피 모든 가게가 문을 닫으니까 이런 생활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은 필요한 물건들을 6시 전에 미리미리 구입을 해놓을 테니까 말이에요. 6시 이후에 할 일을 그 전에 미리 해두니 매출이 떨어지는 일도 없겠죠. 덕분에 자영업 하는 사람들도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되고. 프랑스의 문화라든지 삶을 대하는 마인드라든지 이런 것들이 새롭게 다가왔어요."
▲ 프랑스에서 만난 하인즈
- 여행 중에는 계속해서 새로운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고 함께였다가 다시 혼자가 되잖아요. 태환씨의 글을 읽어보면 외로움이라든가 만남과 이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흔적이 느껴져요. 어땠어요? 태환씨가 여행 중에 느낀 외로움이란 어떤 거였죠?
"저는 아직까지 사무치는 외로움을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대해 쉽게 말하기가 조심스러워요. 사실 저는 여행 중에 외롭다고 느낀 적이 없었어요. 어쩌면 외로움을 대하는 자세가 긍정적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저에게 여행은 그 자체로 새롭고 설레는 일이었고 여행의 목표를 나에 대한 깨달음으로 정했기 때문에 외로움을 긍정적으로 대할 수 있었죠. 외로움도 어두운 외로움과 밝은 외로움이 있잖아요. 여행 중 저의 시야는 굉장히 밝았어요. ‘혼자 여행한다’ 가 아니고 ‘혼자와 여행한다’ 고 생각했기 때문에 저는 혼자인 적이 없었던 거죠.
어떤 답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이걸 해야 할까 저걸 해야 할까 이건 옳은 걸까 틀린 걸까.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하지만 제 생각에는 본인들이 이미 답이 무엇인지는 느끼고 있다고 생각해요. 충분한 사색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답을 확신할 수 없고 그래서 계속해서 낭비적인 고민을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작정하고 혼자와 시간을 가지면 내면의 나와 만날 수 있어요. 그런 시간들이 내면을 더 단단하게 만들고 자신도 몰랐던 또 다른 자아를 만나게 하고 그렇게 스스로 답을 얻는 거죠. 하지만 한가지 전제되어야 할 것은 저는 여행 중에 만난 외로움이었기 때문에 긍정적일 수 있었던 거였고 지금은 외로움이 무조건 긍정적일 수만은 없다고 생각해요."
▲ 어느 날은 함께였다가
▲ 또 어느 날은 혼자가 된다
- 일상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여행 중에 느끼는 외로움은 성질이 다르잖아요. 일상에서 느끼는 외로움은 군중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이니까요. 여행지에서는 실제로 나 혼자이기 때문에 자아와 마주할 수 있지만 군중 속에서 홀로 자아와 마주하는 건 꽤나 용기가 필요한 일인것 같아요.
여행가기전에 처음 본 토익 점수가 300점이었어요. (1번째 인터뷰이도 그렇고 2번째 인터뷰이도 토익 점수가 이러했지만 훌륭하게 잘 살고 있다. 취업준비생들, 다시 한 번 힘내세요.) 유창하지 못한 영어실력 때문에 여행 중 불편한 점은 없었나요?
"불편한 점은 없었고 아쉬운 점은 있었어요. 친구를 사귀어도 깊은 대화를 할 수가 없었거든요. 분명 영어공부는 많이 해놓고 가면 좋아요. 그런데 영어실력이 안 되기 때문에 못 떠난다는 것은 핑계에요. 저도 처음에는 자기소개 하고 필요한 것을 요청할 수 있는 정도의 서바이벌 영어 수준이었어요. 목적을 가지고 대화를 하면 할 수 있는데 잡담이나 수다는 떨 수 없는 정도의 실력이랄까. 여행을 하다 보면 어떻게든 말을 해야 살아남기 때문에 아는 한도 내에서 응용력이 생겨요. 많이 공부해 갈수록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여행을 못 떠나는 이유는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 영어에 대한 불안감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시도는 하고 싶은데 생각과 걱정이 너무 많아 막판에 주저하게 돼요.
저만 해도 6박 7일의 여행을 준비하면서 처음에는 굉장히 설레고 들떴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슬슬 게을러 지더라고요. 그냥 집에서 쉴까? 나가면 고생인데. 혼자 밥은 어떻게 먹고 잠은 어디서 자지? 이런 걱정들이 커지면서 조금씩 귀찮아지는 거예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거 같아요. 처음에는 모두들 설레여 하죠. 하지만 그 설렘을 끝까지 가지고 가는 사람은 드물어요.
"저도 생각이 많은 아이에요. 하지만 걱정은 안 하는 편이죠. 가장 중요한 건 자신에 대한 믿음이라고 생각해요. 처음에 말했듯이 장기프로젝트의 경우는 떠벌리면서 소문 내는 방법이 가장 큰 효과가 있어요. 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고민할 거리가 없을 만큼 진짜 자기가 하고 싶은 일, 바라는 일을 찾는 거죠. 근데 그걸 찾는 게 쉽지 않아요. 모두들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고 있는지, 자신이 선택한 길이 잘못 된 길은 아닐지 걱정하죠. 그런 걱정들 와중에도 가슴속에 두근거림이 조금이라도 느껴졌다면 그 길이 맞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요. 세계여행을 꿈꾸는데 30의 가슴이 두근거린다 말하고 나머지 70의 머리가 취업을 위해 공부를 하라고 말한다면, 20대 젊은이라면 30의 두근거림을 따라가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는 현실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인 고민들이 더 커 보이고 직접 피부로 와 닿을 수 밖에 없죠. 보이기엔 100이 아니어도 내 안에서 30의 가슴이 두근거린다면 그건 사실 30을 넘어 90, 100의 두근거림일 수도 있으니 가슴이 뛰는 대로 따라도 된다고 생각해요."
- 가슴이 뛰는 대로. 여행기간을 왜 500일로 잡았는지 설명하는 글에서 ‘나는 세계여행보다 더 소중한 꿈이 있다.’ 라고 말했어요. 태환씨의 꿈은 뭐죠? 태환씨의 가슴이 뛰는 일은 무엇인가요?
"저로 인해 사람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가는 것, 행복해 지는 모습을 보는 거에요.
대학교 1학년 여름 방학 때 자전거를 타고 국토종단을 할 계획을 짜고 여행 경비를 모았어요. 종착점인 서해에 도착할때까지 6일 정도가 걸렸는데 6일 동안 고작 3000원밖에 안 쓴 거예요! 자전거로 여행을 하면 시골길을 많이 가게 되는데 당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정말 앳된 모습이었기 때문에 어딜 가든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예뻐해 주셨어요. 덕분에 밥도 얻어 먹고 잠자리도 제공받고. 당시에는 그저 운이 좋아 공짜로 여행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 말았죠.
시간이 흘러 책도 읽고 생각이 쌓이면서 그때 일을 돌이켜봤어요. 나는 분명 돈을 모아서 갔는데 어떻게 무전여행을 하고 돌아왔는지 깊게 생각해 보았죠. 사람들의 선량함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어떤 루트로 갔었어도 혜택을 받았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제가 만난 사람들뿐만 아니라 비록 만나지 못했을지라도 어딘가 존재하는 선한 사람들에게 보답을 해주고 싶은데 제가 그 많은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가 옆에서 도와줄 수는 없잖아요. 그렇다면 본질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죠. 우리나라가 부유해지면 그것이 환경으로 가든 복지로 가든 문화로 가든 그 혜택이 그들에게 돌아 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다면 우리나라 안에서 돈을 버는 것 보다 해외에서 돈을 벌어오는 것이 근본적으로 우리나라가 부자가 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수단으로 무역을 선택했어요.
당시 저는 이과였고 반도체학과에 다니고 있었어요. 전과를 하려면 2학년까지 마쳐야 할 수 있는데 그러면 하기 싫은 공부를 1년을 더해야 했어요. 이미 저는 목표가 확고했고 하고 싶은 일이 분명해졌기 때문에 그 길로 자퇴를 했고 국제통상학과가 있는 지금의 학교에 입학해서 지금은 국제통상을 배우고 있어요."
- 우선 목표를 정한 뒤 수단을 찾았네요. 사람들은 흔히 꿈과 수단을 혼동하곤 하는데 태환씨는 그 둘의 차이점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직업이 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직업은 수단일 뿐이죠. 저는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찾았기 때문에 수단을 찾는 일도 수월했어요. 제 꿈은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람들이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여는 건데 마침 제가 무역, 해외, 사업에 흥미가 있었기 때문에 그 방법으로 무역을 선택한 것뿐이지 무역이 꿈인건 아니에요. 살아가면서 무역보다 더 흥미가 생기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더 큰 혜택이 가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직업을 바꿀 의향이 있어요."
- 무역이든 다른 무엇이든, 잘 할거라 믿어요. 그리고 어떤 길을 선택하든 응원할게요. 분명 10년 뒤 태환씨는 엄청 멋있어져 있을 거에요.
귀국 후엔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잡지에 여행기도 연재하고 있는데 지금도 계속 하고 있나요?
"한동안은 여행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고 한 번씩 서울로 강연도 하러 다니고 친구들도 만나며 복학을 준비하고 있어요. 여행기 연재는 지금도 하고 있는데 1월까지 연재하고 그만 두기로 했어요. 아무래도 복학하면 4학년이고 공부에 열중해야 할 것 같아서요. 여행하는 동안 불규칙적인 일상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이제는 규칙적인 생활을 찾아야 할 때니까 자리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 저에게도 취업이라는 현실이 눈앞에 닥쳤으니 1년 동안 나 죽었다 생각하고 열심히 하려고요. 하하하"
▲ 격월로 여행기를 연재 중인 파운드 매거진
- 목표가 뚜렷하니 누구보다 알차게 4학년을 보낼 수 있을 거예요.
그럼 이제 마지막 질문 할게요. 자신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그리고 10년 뒤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은?
"배태환은 지지 않는 청춘. 10년 뒤 배태환에게 하고 싶은 말은, 너의 청춘은 무사한가?"
만난다는 것과 헤어진다는 것은 도대체 뭔가? 사람이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갔다가 자기가 머물 작은 집을 만들어 놓고는 다시 나가버린다. 나의 마음속엔 뜬금없이 빈집이 생겨버렸고 난 이곳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빈집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을 들이지만 그 사람은 마음속에 들어와 자기가 좋아하는 호수 하나를 만들어 두고는 다시 나가버린다. 계속해서 공간이 늘어나지만 지금 내 안에 자리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게 여행을 다니며 만나는 사람들은 나의 마음속에 무엇인가 하나씩을 만들어 두고 떠나갔다. 이 진한 아쉬움과 그리움은 외로움과 다르다.
조금 슬프기는 하지만 그들은 떠나간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이들이 나의 마음속에 작은 집과 호수를 만들어 두었듯이 앞으로 만나게 될 더 많은 사람들이 내 마음속에 들어와 각자 좋아하는 나무며, 호수에 띄울 돛단배, 이 풍경에 어울리는 텃밭을 만들어 주겠지. 지금은 그들의 난데없는 건축에 조금 당황스럽지만 언젠가 나의 마음은 이들로 인해 멋진 풍경을 가진 근사한 공원이 될 테고, 그때쯤이면 누구든 나의 마음속에 들어와 무엇인가를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고서도 편안히 쉬었다 갈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더 멋지고 더 넓은 포용력을 가진 사람이 되라는 고마운 이들의 진심 어린 망치질이라 생각하고 싶다. 헤어짐이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면 받아들여야 한다. 다만 언젠가 그들이 다시 돌아왔을 때 자신이 만든 집에서 편히 쉴 수 있도록, 내 안에 마음껏 건축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 눈앞에 놓인 만남에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싶다. 내가 만나온 많은 사람들이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 만남과 헤어짐에 대하여, 배태환 -
당신이 서 있는 이 길은 어디로 향하고 있나요?
당신이 길 위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당신의 마음속엔 그들이 돌아왔을때 편히 쉴 멋진 풍경과 근사한 공원이 자리하고 있나요?
이제,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곧 찾아갈께요.
[청춘만끽 500일간의 세계일주] 이곳에 가면 태환군의 생생한 청춘만끽 여행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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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인과의 충중몽담'은 흔들리고 방황하는 사회초년생들의 현재와
가상의 10년 뒤를 인터뷰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이제 당신의 미래를 들려주세요. : )
[ 100인과의 취중몽담 - http://blog.naver.com/100_mongda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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