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Roma) - 이탈리아
고대 로마의 전설에 따르면, 로마는 기원전 753년 4월 21일, 고대 그리스의 영웅인 아이네아스의 선조이자 전쟁의 신 마르스의 쌍둥이 아들로 태어난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가 테베레 강가 동쪽에 위치한 로마의 일곱 언덕 가운데 하나인 팔라티노 언덕 위에 건설했다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테베레 강가에 버려져 늑대 젖을 먹고 자랐다는 전설이 있다) 그러나 이후 형제 사이 불화로 싸움이 일어났고, 형인 로물루스가 동생 레무스를 죽이고 도시의 주도권을 차지했다고 한다. 그 후 로물루스는 자기의 이름을 따서 도시 국가의 이름을 로마라고 했고, 로마의 건국 시조로 추대받고 있다.
1. 콜로세움 Colosseum
이탈리아 로마의 중심지에 위치한, 고대 로마시대에 건설된 투기장. 원래 이 타입의 것은 원형극장(Amphitheatre)이라고 하는 건축물로 서기 80년경 완공되었다. 원형극장도 두 종류가 있어서 하나는 콜로세움처럼 검투사 경기나 서커스 관람 등을 하는 스타디움의 개념인 앰피시어터가 있고, 다른 것으로 원형 좌석이 있어서 희곡, 연주 등을 행하는 예술적 상영장인 앰피시어터가 있다. 콜로세움은 전자의 것으로, 로마가 건축한 것 중에서 가장 큰 원형극장이다. 또한 간과하기 쉬운 사실로 완전한 원형이 아니라 타원 모양이다. 예로부터 가장 재밌는 3대 구경이 불구경, 물구경, 싸움구경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투기장은 그 세 가지 구경거리를 충족시켜 주는 장소였다. 그리고 현대인들에게는 경악할 내용이지만, 볼거리로 제공되는 이른바 "수간 쇼"라는 것도 있었다고 한다.
수용 규모에 대해서는 입석의 형태까지 고려하면 적어도 5만은 상회하고 최대 8만은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연구 결과다.
목숨을 걸고 싸운 검투사! 처절한 생존의 경기장 '콜로세움'의 모든 것
동영상 : 42분14초
https://youtu.be/Duj0oiOiw4Y?si=UZt4i-SuyI89xeMu
2.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은 콘스탄티누스 1세의 즉위 10년을 기념하여 원로원이 세운 것이다. 콘스탄티누스가 312년 로마에 진군할 때, 대낮에 십자가와 "이것으로 이겨라"라는 환상을 전군(全軍)과 함께 보고 막센티우스군(軍)을 테베레강 근처에서 격파했는데, 황제의 그때 싸움 장면이 이 문의 부조(浮彫)에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이 사건은 기독교 공인과 제국의 통일에 획기적인 것이었다. 문은 흰 대리석으로 되어 있고, 세 개의 통로가 있으며, 일부는 다른 건축에서 옮긴 것이다. 로마에 있다. 콘스탄티노플에는 대신에 '선량한 양치기의 상(像)'이 놓여 있다. 1960년 하계 올림픽 당시 육상 마라톤의 결승점으로 활용되었다.
블로그 :
https://m.blog.naver.com/eileen_art/40207058347
[로마]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로마에서 가장 큰 개선문으로 콘스탄티누스 황제...
blog.naver.com
오디오 투어 : 4분10초
https://youtu.be/SlJSC8HIgyE?si=7ndyvV5HbK9iTG6t
3. 포로 로마노
포로 로마노(라틴어: Forum Romanum)은 고대 로마 시대의 유적지이며, 이탈리아어로는 포로 로마노(이탈리아어: Foro Romano)라고 부른다. 이탈리아 로마 구도심 가운데에 있다. 주요 정부 기관 건물들이 직사각형 모양의 광장을 감싼 형태다. 고대 로마 시기에 이 곳을 포룸 마그눔(Forum Magnum)이나 포룸(Forum)이라고 불렀다.
고대 로마의 가장 중요한 건축물 중 많은 것들이 포로 로마노에 있었다. 최초로 세운 사원과 신전, 고대 왕궁, 베스타 신전, 베스타 여사제들 거처 등이 이곳에 있었다. 포로 로마노는 로마 제정 시기에 크게 확장되었으며, 로마 공화정 시기의 의회장도 이곳에 있었다. 또한 율리우스 카이사르 시기에도 탈바꿈하게 되었다. 그 후에도 여전히 로마 제국의 상징처로 여겨졌다. 로마 역사 내내 포룸 로마눔은 로마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였다. 이곳에서 개선식, 공공 연설, 선거, 심지어는 검투사 경기까지 국가의 중대 행사를 열었다. 팔라티노 언덕과 캄피돌리오 언덕 사이 있으며, 현재는 몇몇 잔해와 기둥만 남아있다. 현재 어느 정도 발굴을 진행했고, 연간 450만 명 관광객이 방문한다. 고대 로마의 가장 중요한 건축물 대부분 바로 이 포룸 로마눔에 있었다. 로마에 세운 최초 사원과 신전은 이 곳에 있었으며, 고대 왕궁, 베스타 신전, 베스타 여사제들 거처 등 모두 이 곳에 있었다. 포룸 로마눔의 건물들은 전체적으로 로마 제정 시기에 크게 확장했었다.
유적 동남쪽에는 로마 공화정 시기 의회장이 있었다. 그 외에도 공화국 정부 기관, 신전, 동상, 사원이 곳곳에 즐비하다. 포룸 로마눔은 율리우스 카이사르 시기 한차례 탈바꿈하게 된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포룸 한복판에 '율리우스 바실리카'를 짓고 그 곳으로 원로원 회의장과 재판장을 모두 옮겼다. 로마 공화정 후반과 제정 초반에 시민은 이 곳에 모여 국가의 핵심 업무와 과제를 수행하였다. 제정 시대에 이르러, 포룸 로마눔이 차지하고 있던 경제적 업무는 대부분 트라야누스 포룸 같이 조금 더 거대한 건물로 옮겼다. 하지만 이곳 포룸 로마눔의 정치적 중요함과 상징성은 퇴색하지 않았고, 그 후에도 여전히 로마 제국의 상징처럼 여겼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포룸 로마눔을 마지막으로 크게 확장하였으며, 이후 약 200년 간 서로마 제국의 정치적 중심으로 남았다.
오디오 투어 : 20분02초
https://youtu.be/qmCnpGJFBIk?si=0hMzViSZUGU8PVdK
동영상 : 5분53초
https://youtu.be/TOTP-Ug-JJo?si=Ylk98fQW4j0FA1hK
동영상 : 20분 09초
https://youtu.be/GJYFcvORVHk?si=RPKJKqkv_aWrfhY_
4. 트레비분수
트레비 분수(이탈리아어: Fontana di Trevi)는 로마에 있는 분수이다. 이탈리아의 건축가 니콜라 살비에 의해 지어졌고, 높이는 26.3m, 너비는 49.15m이다. 로마에 있는 바로크 양식의 분수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며, 세계적으로도 매우 유명한 분수이다. '로마의 휴일'과 같은 영화에도 다수 출연하며 로마의 랜드마크 중 하나가 되었다.
1629년 이전 현재 트레비 분수가 자리한 곳은 옛 로마 시대에 물을 공급하던 수로가 끝나는 곳이었다. 이 수로는 로마에서 13km나 떨어진 곳에서 물을 끌어와 시민들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했고, 무려 400년 동안이나 이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였다. 1629년, 당시 교황이었던 우르반 8세가 새로운 분수를 짓기로 결심하며, 베르니니에게 새 분수의 디자인을 맡겼다. 하지만 설계가 다 끝나기 전 교황이 서거하며 분수의 건축은 잠정적으로 중단되었다. 따라서 베르니니의 계획이 실제로 실행되지는 않았지만, 베르니니의 자취는 여전히 트레비 분수 곳곳에 남아있다.
바로크 시대에 들어서며, 국가 간 경쟁이 심화되었고, 이에 따라 각 나라의 국왕과 교황은 서로 더 아름다운 건축물을 짓는 데 열정을 기울였다. 1730년 교황 클레멘스 12세가 새로운 분수를 짓기로 결정하며, 공모전을 벌였다. 이 공모전에서 니콜라 살비의 안이 처음에는 채택되지 못했으나, 국제 정세에 의해 결국 그의 안이 받아들여졌다. 1732년에 분수가 착공되었다. 니콜라 살비는 1751년에 분수의 완공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으나, 혹시라도 후대의 건축가들이 그의 작품을 망치는 일이 없도록 매우 구체적인 설계도를 남겼고, 이 분수의 조각을 하기 위해 4명이나 되는 조각가들이 고용되었다. 트레비 분수는 1762년에 완공되었으며, 교황 클레멘스 13세에 의해 군중들에게 개방되었다.
동영상 : 6분46초
https://youtu.be/WwUVERPru-A?si=TAfgrmdK3VXURPNw
동영상 : 3분44초
https://youtu.be/fIkD5pzAFlg?si=cpMeWLTb3x6f52LX
사진
5. 베네치아광장
베네치아 광장(Piazza Venezia)은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광장이다. 1871년 이탈리아 통일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되었으며, 현재는 테르미니 역과 함께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하며 광장 안에는 이탈리아를 통일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를 기리기 위한 기념관이 있다.
동영상 : 3분47초
https://youtu.be/-I1lx__UCcg?si=iSIm5-KZjaT1Uev7
6. 판테온
판테온(라틴어: Pantheon[1])은 이탈리아 로마에 위치한 옛 로마 신전으로, 7세기 들어 가톨릭 성당으로 활용되면서 지금까지 전한다. 판테온은 그리스어 ‘판테이온(Πάνθειον)’에서 유래한 말로, “모든 신을 위한 신전”이라는 뜻이다. 고대 로마 신들에게 바치는 신전으로 사용하려고 지은 로마의 건축물로,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서기 125년경 재건했었다. 모든 고대 로마 건축물 가운데 가장 보존이 잘 되어 있고, 전 세계를 통틀어 당대 건물 가운데서도 가장 보존 상태가 좋다고 평가한다. 역사적으로 판테온은 쭉 사용했었다. 현존하는 건물의 설계는 트라야누스 황제의 건축가인 다마스쿠스의 아폴로도루스가 했다는 견해도 있으나, 이 건물 자체와 건물의 설계는 하드리아누스 황제나 그의 건축가들이 했을 가능성이 크다. 7세기 이후부터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당으로 사용했다. 판테온은 현재 로마에서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돔 구조이다. 바닥에서 원형 구멍까지의 높이와 돔 내부 원의 지름은 43.3m로 같다.
18세기의 판테온의 실내. 조반니 파올로 파니니의 그림. 파니니의 다른 그림을 보려면 빈의 리히텐슈타인 박물관에 있는 악티움 해전(기원전 31년) 이후, 아그리파는 그의 집정관의 세 번째 임기 중에 원래의 판테온을 건립하고 이를 신에게 봉헌하였다(기원전 27년). 아그리파의 판테온은 서기 80년 로마에 일어난 대화재 때문에 다른 건물과 함께 불타 없어졌다. 지금 있는 건물은 서기 125년경 하드리아누스 황제 재위 때 세운 것이다. 원래 있던 명문(“M·AGRIPPA·L·F·COS·TERTIVM·FECIT”. Marcus Agrippa, Lucii filius, consul tertium fecit를 의미하며, “'루시우스의 아들인 마르쿠스 아그리파가 세 번째 집정관 임기에 만들었다”라는 뜻이다.)을 새로운 건물 정면(파사드)에 덧붙였으며, 하드리아누스가 계획한 로마 전역에 걸친 재건 계획을 따라 완전히 재건했다. 하드리아누스는 동방으로 널리 여행했으며, 그리스 문화를 극히 칭송한 국제적인 황제였다. 그는 모든 신에게 바칠 신전으로 판테온을 건립했으며, 이는 로마 제국 내 로마 신을 믿지 않거나 다른 이름으로 로마 신을 섬기는 백성을 위한 일종의 혼합주의적인 행위였다. 이 건물 실제 용도는 알려지지 않았다.
콘크리트에 쓰인 소란 반자는 거푸집에 부어졌으며, 이는 굳기 전까지 아래에 가구 구조를 만들어 지탱했다. 그리고 원형 구멍을 통해 빛을 받아들이게끔 하였다.
그리스계 로마 사람으로 원로원 의원과 집정관을 지낸 로마사(史)의 작가 카시우스 디오는 판테온을 재건하고서 약 75년 후 책을 저술했는데, 실수로 이 건물을 하드리아누스가 아닌 아그리파의 공으로 돌렸다. 디오 책은 판테온에 관한 가장 당대 근접한 저술로 보이며, 이 건물의 기원과 목적이 서기 200년까지도 명확하지 않았다는 점은 흥미롭다.
“아그리파는 판테온이라 불리는 건물을 완공했다. 이 건물이 마르스와 베누스를 포함한 많은 신의 조상들로 장식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나는 하늘을 닮은 건물의 둥근 천장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본다. (카시우스 디오, 로마사(史), 53.27.2) ”
판테온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와 카라칼라 황제에 의해 서기 202년에 보수되었고, 이를 기념하는 작은 비석이 세워졌다. 이 비석에는 “pantheum vetustate corruptum cum omni cultu restituerunt(세월에 의해 낡은 판테온을 그들이 모든 정성을 들여 보수하였음)”라는 글이 새겨졌다.
동영상(가이드투어) : 20분
https://youtu.be/sHAXLGpF_XY?si=OD6U4yv_9PyMafqa
동영상 : 6분23초
https://youtu.be/hoa0L6DtKow?si=FFJyxceeyZY_vZfG
7. 스페인광장
스페인 광장(스페인어: Plaza de España)은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광장이다. 1916년, 스페인의 대표적인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사후 300주년을 기념하여 만들어졌다. 광장 중앙에는 세르반테스의 기념비가 있고 그 앞에는 애마 로시난테를 올라 탄 돈키호테, 노새를 탄 산초 판사의 동상이 있다.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수로를 건널 수 있는 다리의 갯수는 총 4개가 있다. 이는 옛 스페인의 네 개 왕국을 상징한다. 그리고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마흔 여덟 개의 타일 벤치가 있다. 이는 스페인의 각 주를 대표한다. 니가, 세비야,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말라가 등등 각 주의 이름이 적혀져 있다. 그 중에서도 '그라나다' 그림이 가장 유명하다.
그라나다의 왕 보압딜(무하마드12세)이 알암브라 궁전의 열쇠를 페르난도 왕과 이사벨 여왕에게 넘기는 장면이다. 스페인광장은 반원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반원 모양에도 나름의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반원모양의 건물을 통해 남미를 포옹하는 스페인의 두 팔을 표현하려는 의도이다. 그리고 모든 구조물은 과달키비르강을 향해 있는데 이는 남미로 향하던 배들이 다 그 강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동영상 : 7분38초
https://youtu.be/oU4DbUhX7hA?si=dQDv4zZn_wcYuKnX
8. 바티칸 시티
바티칸 시국(라틴어: Status Civitatis Vaticanæ, 이탈리아어: Stato della Città del Vaticano)은 이탈리아의 로마 시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국경 역할을 하는 장벽으로 둘러싸인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는 위요지 도시국가이다. 바티칸 시는 바티칸 언덕과 언덕 북쪽의 바티칸 평원을 포함하며, 총 면적은 0.44km2에 인구는 수백 명에 불과한 극소 국가로서 면적으로 보나 인구로 보나 전세계의 주권 국가 중 가장 작다. 서울시 여의도 면적의 대략 6분의 1 정도로 서울시 보라매공원 크기와 비슷하다. 이전에 로마를 중심으로 이탈리아반도 중부를 넓게 차지한 교황령(756-1870)이 있었으나, 19세기 이탈리아 왕국에 강제 합병되었고, 10년 후인 1870년에는 로마와 더불어 나머지 다른 지역도 모두 이탈리아에 합병되어 소멸했었다. 바티칸 시국은 이 교황령의 회복을 목표로 한 1929년 2월 11일 라테라노 조약의 체결로 독립을 성취하여 오늘에 이른다.
교황이 통치하는 일종의 신권 국가로, 전 세계 로마 가톨릭교회의 총본산이다. 바티칸 시국의 공무원들은 대부분 성직자나 수도자로 이루어져 있다. 국제 관계에서는 성좌(Sancta Sedes)로 호칭된다.
동영상 : 3분27초
https://youtu.be/F4a4dP4bGP4?si=3faUv1_rIaZnevBH
9. 성베드로 광장
성 베드로 광장은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앞에 자리한 크고 아름다운 광장이다. 이탈리아 바로크의 거장 잔 로렌초 베르니니가 1656~1667년에 걸쳐 설계해 완공했으며, 최대 30만 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다. 광장의 평면은 열쇠 구멍 모양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베드로의 지물이 천국의 열쇠이기 때문이다. 광장이 들어서기 전의 성당 앞은 수많은 집과 복잡한 골목길이 미로처럼 얽힌 무질서한 공간이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이 교황 율리오 2세가 1506년 4월 18일에 초석을 놓은 이래 교황 우르바노 8세가 1626년 11월 18일에 축성식을 거행할 때까지 120년 동안 공사가 진행되었지만, 1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광장을 만들려는 논의는 나오지 않았다. 광장을 조성하려는 논의가 시작된 것은 축성식이 끝나고 20년 가까이 지난 교황 인노첸시오 10세의 치세 때였다. 건축가 카를로 라이날디(Carlo Rainaldi, 1611~1691)는 교황의 요청을 받아 각각 육각형, 사각형, 원형, 타원형으로 된 광장 설계안 4가지를 제출했으나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계획에 속도가 붙은 것은 인노첸시오 10세가 사망한 뒤 즉위한 교황 알렉산데르 7세 때로, 알렉산데르 7세는 교황으로 선출되자마자 곧바로 건축위원회에 광장 조성에 대한 논의를 하도록 명령했다. 그리고 광장 공사를 담당할 건축가로는 알렉산데르 7세가 파비오 키지 추기경이었던 시절부터 친분이 있었으며, 당시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 수석 책임자였던 잔 로렌초 베르니니가 선정되었다.
알렉산데르 7세는 성 베드로 광장을 통해 대성당과 교황청, 나아가 가톨릭과 교황권의 위세를 떨치고자 했다. 광장 공사에 필요한 예산이 100만 스쿠디가 넘을 것으로 추산되자, 이처럼 천문학적인 비용은 그렇잖아도 전임 교황들의 헤픈 씀씀이 때문에 적자에 시달리던 교황청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 많은 사람들이 공사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반대하고 나섰다. 그렇지만 교황은 "광장 공사가 로마 빈민과 노동자들에게 일거리를 제공해 로마 시 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줄 것이므로,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 하고 주장하며 강하게 밀어붙였다.
동영상 : 5분
https://youtu.be/buOEI2QzS6g?si=Ljyso9rPn-OwjZsS
위 자료는 위키백과, 나무위키, 트립어드바이저, 유네스코와유산, 브런치스토리, 유튜버, 핀테레스트에서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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