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동서도자교류사-마이센으로가는길/미스기 다카토시/김인규옮김/눌와
-이책을 읽고-
일본인인 미스기 다카토시는 현재의 일본 젊은 이를 위해 일본 도자기의 과거 우수성을 알리기 위한 목적이며
동양의 도자기가 유럽에 미친 영향에 대해 체계적으로 전개 되어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도자가 일본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너무도 빈약하고 오리려 일본의 자기생산에 크게 기여한 조선에서 온 이삼평을 일본군의 안내, 식량확보등을 도와 일본군이 패해서 퇴각할 때 도공집단의 우두머리로 일본으로의 집단이주를 교섭했다고 기술되어있다. 한국도자가 일본에 미친 영향을 더 푹넓고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자가 절실히 필요한 함을 느낀다.
p71
도자기 표면에 백토를 거칠게 바른 것을 일본에서는 하케메*라고 부르는데 휙휙 스쳐간 하얀 붓자국이 재미있고 특히 한국에서 애호되었다.
분장기법이란 갈색 몸체 위에 전체적으로 백토를 발라 흰 도자기처럼 보이는 것을 가리킨다. 이 기법은 세계어디에나 쓰였고 페르시아 도기, 중국 츠저우 가마**계의 도기에도 사용되었으며 지금도 인도의 한 지방에서는 이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또 신대륙과 구대륙에서 동일한문화가 동시에 발생한 예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인데, 안데스의 토기, 멕시코나 과테말라, 코스타리카의 토기에도 백토로 분장한 것이 발견되어 인간의 사고방식이 유사하다는 것을 느낄수 있다.
그런데 백토만 바르면 금방 벗겨져 버리기 때문에 그 위에 유기질의 유약을 입히는 방법이 고안 되었다. 어쩌면 그것이 서남아시아, 특히 시리아 등 페르시아계의 도기에서 시작되어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 북부의 가마, 특히 당 삼채가마나 츠저우계의 가마들로 전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아직 확증은 없다.
*하케메: 우리나라의 분청사기중 귀얄분청, 즉 도자기의 표면에 귀얄로 흰색 화장토를 바른 것.
**츠저우 가마: 중국 허베이 성 츠 현(磁縣)을 중심으로 도자를 굽던 요업생산지이다. 회색 태토에 백토로 화장을 하고 투명한 유약을 발랐다. 문양을 넣는 방법이 시대에 따라 다양한데 그 중 박지(剝地)기법은 우리나라 분청사기의 수법과 유사하여 그 영향관계가 주목된다.
p96
중국 청자의 기법이 한국에 전해진 것은 중국 청자 생산의 초기인 10세기 웨저우 가마 (월주요;越州窯)의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웨저우 가마 청자가 어느 시기에 고려청자의 발생에 영향을 주었는지 명확하지는 않다. 그러나 웨저우 가마 청자가 질적으로 쇠퇴하고 대부분 윤형(輪形) 굽을 보이는 10세기보다는 양질의 청자를 대량으로 생산한 9세기 중반과 후반의 웨저우 청자가 고려청자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되는데 아직 확정적이지는 않다.
p101
일본인은 물건이 처음 만들어 졌을때와 달리 비바람을 맞거나 흙 속에 묻혀 자연적으로 나타나는 변화, 즉 청동기의 녹이나 유약의 변화 등을 즐긴다는 점에서 다른 사람들과 상당히 다르다. 일본인 특유의 미감인 와비*사비*라는 것은 그러한 느낌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와비란 다도의 극치로서 간소하고 차분한 정취를 보이는 것을 말하며 사비 또한 다도의 극치로서 유유자적한 정취를 보이는 것을 말한다.
p102
도요토미 히데요시나 센 리큐(千 利休)*가 임진왜란때 조선의 막사발을 다도의 다완으로 사용하며 거기에서 미를 발견하고 이도(井戶)다완이라 부르며 일본 다인들 사이에서 보물로 취급되고 있다.
*센 리큐: 1522~1591 일본 다도에서 성인으로 일컬어지는 사람
p103
한국에서 초기 청화백자에 사용된것은 중국을 거쳐서 들어온 회청(回靑), 즉 페르시아산 산화 코발트인데 한국에서도 동일한 청색 안료를 찾고 있었다는 내용이<용재총화>*에 적혀 있다.
그런데 청자, 백자, 청화백자, 나아가 철회(鐵繪)나 음각(陰刻 : 다른 말로 彫花, 중국에서는 이를 彫線이라한다), 박지(剝地 : 중국에서는 나타내고자 하는 문양을 제외한 바탕을 긁어낸다고 하여 긁을소 떨어질락 소락(騷落)이라 한다)등의 중국계 기법은 한국에 정착했으나 화려한 채회자기는 한국에서 발전하지 않았다. 그것은 유교사상(현란한 색상보다 흰색 한가지만을 선호하는 사상)이 성행했기 때문이라고 일반적으로 설명하고 있으나, 이유가 그것뿐인지에 대해서는 나는 결코 결론을 내릴수 없다.
*용재총화<傭齋叢話>:도자기에 관한 가장 오래 된 한국문헌으로서 흔히 인용되는 것. 성현(成俔:1439~1504)이라는 문인이 씀.
p115
베트남 청화백자의 번영에도 중국 명나라 중기, 도자기의 암흑시대라고 불리는 정통제(正統帝), 경태제(景泰帝), 천순제(天順帝)의 1435년에서 1436년 사이 내려진 해금령이 크게 작용했다.
p116
베트남 청화백자는 반자태로서 그 질이 반드시 중국 것과 같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수준의 물건이 구워졌다. 14세기 중반의 원나라 청화백자에 나오는 어초문, 초조문, 연화당초문, 모란문을 중앙에 그린 커다란 접시 등이 만들어 졌는데 기린문이나 수금연지문등도 있어서, 이미 청화백자를 알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여 그 문양을 모사한것 들이 구워졌다.
p127
네이샤부르 삼채
이란 북동부에 카비르라고 불리는 큰 사막이 있다....실크로드 교역 루트 중의 하나인 네이샤부르 마을은 중요한 물자의 집산지로, 특히 9,10세기에 여기에서 페르시아 삼채를 비롯한 다채색도기가 구워졌다. 삼채풍의 녹색, 중국에는 없는 안티몬에 이한 짙은 황색, 티탄과 망간에 의한 보라색, 거기에 선각으로 문양을 넣은 것들이 구워 졋다. 일보 쇼소인의 삼채, 요삼채, 당삼채, 또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한 트란스요르단의 삼채 등은 기법면에서 보면 네이샤부르 삼채와 각각 자매관계라고 생각 할 수 있다.
p128
우리용어로는 박지기법, 중국에서는 소락이라는 기법도 네이샤부르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네이샤부르의 도자기는 ... 어쨌든 중국 북부 츠저우 가마와의 기술적인 교류가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고 평소 생각하고 있다
p176
유럽에서는 도자기를 총칭해서"세라믹"아라 부르고 도기는"포터리" 자기는"포슬린(porcelain: )"이라고 구별하고있다.
p200
1709년에 독일 마이센 가마에서 유럽 최초의 자기를 만들었다
p246
피규어린: 자기로 만들어진 장식용 인형의 총칭
p255
과거에는 중국 청화백자가 최고였으나 현재 시점에서 가장 화려한 도자 기술을 꽃피운 곳은 영국 웨지우드 도자기 이다.
'독서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14. 빙산이 녹고있다고?/존 코터/김영사 (0) | 2010.01.19 |
---|---|
13. 월주요 청자와 한국 초기청자/ 김인규지음/ 일지사 (0) | 2010.01.18 |
11. 한국의 전통공예 도기/ 나선화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 | 2009.12.28 |
10. Think Different/생각을바꿔라!!행동을바꿔라!! (0) | 2009.12.27 |
9. 알기쉬운 한국도자사 / 유홍준 ; 윤용이 / 학고재 (0) | 2009.1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