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월주요 청자와 한국 초기청자/ 김인규지음/ 일지사
13. 월주요 청자와 한국 초기청자/ 김인규지음/ 일지사
1. 9.10세기 월주요 청자의 기형과 문양
이 책은 현대부터 송대에 걸쳐 오랜시간 생산되었던 월주요 청자 중, 본격적인 생산이 이루어져 동아시아의 한국, 일본, 중동의 이집트, 이라크, 이란 등에 무역도자기로서 수출되어 각국의 청자나 녹유도기의 생산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던 9,10세기의 월주요 청자를 문헌과 유적에서 출토된 자료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9,10세기의 월주요 청자는 출토 지역에 따라 3군으로 구분하여 기술하였다. 제1군은 동아시아의 중국, 한국, 일본에서 출토된 월주요 청자이다. 제2군은 중동의 이집트, 이라크, 이란의 유적에서 출토된 월주요 청자이다. 제3군은 동남아시아의 필리핀,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인도 등 제1군과 제2군의 지역을 연결하면서 중계무역의 역활을 했던 지역 및 유적에서 출토된 월주요 청자이다.
제1군의 동아시아의 중국, 한국, 일본에서 출토된 월주요 청자는 발굴보고서, 출토품을 중심으로 아래와 같이 고찰 했다.
9세기 월주요 청자는 완, 명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완은 연대가 분명한 자료를 통해 시대에 따라 굽 만드는 방법이 약간씩 변하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즉 9세기 중엽의 완은 굽 접지면이 1.2Cm 정도가 된다. 9세기 후반과 10세기 전반의 완의 굽은 접지면이 0.4~0.7Cm의 윤형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와 같이 월주요 청자완의 굽 접지면이 서서히 좁아지고, 10세기 전반에는 완의 굽이 윤형으로 변하는 것은 월주요 청자완의 연대를 결정하는 데 있어 중요한 기준이 된다.
현재까지 월주요 청자완의 유형굽은 9세기 후반에 출현했다는 설이 주류였다. 그러나 한국에서 출토된 월주요 청자완에 대한 조사 결과에 의하면, 일부이지만 9세기 중엽의 월주요 청자완에서 윤형굽이 보이는 것이 명확해 졋다. 그리고 사실은 월주요 청자완의 굽을 기준으로 한국의 초기청자의 출현 시기를 추정하는 결정적인 실마리가 되고 있다.
9세기의 월주요 청자수구는 중국 영파시 화의로 유적에서 출토된 예를 확인 할 수 있다. 당대 제1문화층에서 출토(847~859년)된 수주는 나팔형의 구연, 동체의 종침선, 동체 상부의 환형이식, 평평한 띠 형태의 손잡이 등이 특징으로 한국 황룡사지나 청해진(828~851년), 규슈 고로칸 유적, 이집트의 푸스타트 유적 등에서 출토된 청자수주와 유사하여 9세기 중엽에 양산된 수주가 동아시아와 중동지역에 널리 반입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9세기 중엽의 월주요 청자에서 중요한 사실은 이전에 보이지 않는 타호, 잔탁, 사이호, 수주 등이 출현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기형은 8세기 후반 내지 9세기 전반의 금속기를 모방한 것으로 9세기 중엽경 다도의 유행으로 증가된 다기 및 일상용기의 수요에 맞추어 재료를 금속기에서 도자기로 바꾼 결과로 양산된다.
그리고 9세기 중엽경 중국 청자의 양산화는 중국만이 아닌 주변지역에 절대적인 영향를 미치게 된다. 그러한 대표적인 예가 한국의 초기청자와 일본의 녹유도기의 탄생으로 9세기 중엽에 양산된 월주요 청자의 신출 기형은 한국의 한국의 초기 청자와 일본의 녹유도기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9세기 월주요 청자의 대부분은 무문이지만 , 9세기 중엽의 상림호 하화심요지와 절강성 영파시 화의로 유적에서 출토된 월주요 청자에는 선조의 초화문이보인다. 그리고 이시기의 선조의 초화문 청자 전례품으로 대중 원년의 명문을 가진 수주와 이라크 사마라에서 출토된 윤화형청자완 등이 있다.
10세기 월주요 청자는 오월국의 전씨의 왕족묘인 전관묘, 공묘마씨묘, 문목왕 전원관묘 등에서 확인 할 수 있다. 기형은 호, 완, 명, 수주, 병, 합, 잔탁, 스푼 등 일상용기의 대부분을 갖추고 있다.
호는 타원형으로 동체의 상부에는 띠 형태의 이식이 붙어 있다.
연대가 명확한 완으로 901, 939, 941,987년의 자료가 있다. 10세기 월주요 청자완은 굽이 윤형으로, 구연의 대부분이 윤화형이고 동체에는 종침선이 실시되고 있다. 그리고 10세기 후반에 이르면 청자완의 굽 내부에는 링형 도침의 흔적이 명확히 남아 잇다. 그리고 10세기 월주요 청자의 기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10세기 전반과 중엽에 보이지 않았던 사이병의 출현이다. 연대가 분명한 사이병은 987,998년 등 10세기 후반에 집중하고 잇다.
10세기 월주요 청자는 전반과 중엽에는 무문이 많지만 후반이 되면 초화문, 연판문, 쌍접문, 봉황문, 용문, 등 다양한 문양이 보인다. 선조의 문양은 완, 명의 내면에 많이 보인다. 문양은 용, 봉황, 쌍접, 초화문 등이 있다. 부조의 문양의 대부분은 연판문으로 완, 명의 외측에 주로 시문되어 잇다. 연판문은 상림호 요지를 비롯하여 은현 요지 등에서 많이 보이거, 10세기 중엽과 후반의 정요, 고려청자, 이집트 푸스타트 유적에서 출토된 이슬람산의 녹유도기에서도 보여, 10세기 후반의 월주요 청자가 동시기의 중국과 한국의 청자, 중동의 도기에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월주요 청자의 문양 중 용문, 봉황문은 상림호 요지에서 많이 보이지만, 다른 요지에서는 드물어 상림호 요지의 특수성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10세기 후반의 용문, 쌍봉문은 규슈 고로칸, 다자이후, 필리핀 등에서 출토되지 않고 이집트 푸스타트 유적 등 일부의 지역에만 보여, 푸스타트 유적을 비롯하여 중동 지역에서 출토된 용문, 봉황문의 월주요 청자는 상림호 요지에서 생산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2. 한국에서 출토된 월주요 청자의 편년과 의의
제1군의 동아시아 지영 중 한국에서 출토된 월주요 청자는 공주, 부여, 경주를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출토되고 있다. 9세기 전반 월주요 청자는 경주 배리, 안압지, 미륵사지 유적에서 출토되고 있다. 월주요 청자의 대부분은 완으로 측선이 직선이고 굽지름 6.0~7.0Cm, 굽 접지면 2.0~2.2Cm의 전형적인 해무리굽으로 겹쳐구운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특히 배리 유적에서 출토된 청자완은 9세기 전반의 장사요 청자나 신라 토기와 공반되고 상림호 요지에서 출토된 정원 10년(794년)의 명문을 가진 완의 굽 접지면과 유사하여 8세기 후반까지 소급될 가능성이 있어 월주요 청자의 공백기인 8세기 후반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자료라고 생각 한다.
한국에서 출토된 월주요 청자의 대부분은 9세기 중엽의 것으로 미륵사지, 청해진, 신금성, 황룔사지, 부소산성 유적 등에서 볼 수 있다. 미륵사지, 청해진(828~851년), 신금성 유적에서 출토된 월주요 청자는 대중 연간의 하한을 알 수 있는 자료로 9세기 월주요 청자의 연구에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기형은 대부분이 완이로 수구, 소호 등이 일부 보이고 있다.
완은 구연부가 직구형과 윤화형의 두 종류가 있다. 윤화형 구연 완의 동체에는 종침선이 실시되었다. 굽지름은 5.7~6.6Cm, 굽 접지면 1.0~1.2cm 으로 9세기 전반의 청자완의 굽 접지면보다 좁아지고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 출토된 9세기 중엽의 월주요 청자완에서 가장 주목할 자료는 신금성 유적에서 대중 연간의 명문을 가진 기와편과 함께 출토된 월주요 청자완이다. 이 청자완은 구연이 윤화형으로 굽접지면이 0.4Cm의 윤형굽이다.
이와 같이 한국에서 출토된 9세기 중엽의 월주요 청자완은 미륵사지, 황룔사지, 청해잔 등에서 출토된 해무리굽과 신금성 유적에서 출토된 윤현굽이 공존하고 있어 월주요 청자완의 굽을 기준으로 한국 초기청자의 출현시기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 출토된 9세기 중엽의 월주요 청자수주는 청해진, 황룔사지 유적 등에서 보인다. 나팔형의 구연, 동체의 종침선, 평평한 띠 형태의 손잡이는 절강성 영파시 화의로 당대 제1문화층(847~859년)에서 출토된 수주와 유사하다. 그리고 그 동일한 수주가 일본 규슈에서도 보여 일본에서 출토된 월주요 청자수주의 편년에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그 밖에 이집트 푸스타트 유적에도 평평한 형태의 손잡이를 가진 수주의 파편이 보여 9세기 중엽에 양산된 월주요 청자 수주가 무역도자기로서 동아시아와 중동 지역에 널리 반입된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힌국에서 출토된 10세기 월주요 청자는 수량이 적고 고려 정종의 안릉(945~949년)과 제주도 용담동 유적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안릉에서 출토된 완과 명은 세트로 생각되고 동일한 완과 명이 강소성 진강 손언사묘에도 보여 10세기 전반까지 소급될 가능성이 있다. 나아가 정종 안릉에서 출토된 화형명과 동일한 것이 상림호 파도산 요지에서 보여 상림호 요지에서 생산되어 고려에 반입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러한 완과 명의 세트는 일본 규슈의 고로칸에서 다수 확인 되고 잇다.
제주도 용담동 유적에서 출토된 월주요 청자수주의 일부에는 "千"자의 명문이 보인다. "千"자의 명문은 상림호 피도산 요지의 청자 파편과 하남 공현 서촌경 원덕이후릉에서 출토된 함평 3년(1000년)의 청자 합에도 보여 제주 용담동 유적에서 출토된 "千"자명은 10세기 후반의 것으로 생각 된다.
이와 같이 한국에서 출토된 월주요 청자는 9세기 것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9세기 전반의 자료 중 일부는 8세기 후반까지 거슬러 올라갈 가능성이 있어 월주요 청자의 공백기라고 할 수 있는 8세기 후반의 연구에 있어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 그리고 미륵사지, 청해진, 신금성 유적 등, 연대가 분명한 유적에서 출토된 월주요 청자는 절간성 영파시화의로 유적에서 출토된 월주요 청자와 함께 월주요 청자의 연구에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자료라고 생각 된다.
그러나 한국에서 출토된 10세기 월주요 청자는 양이 적고, 이러한 배경으로서 10세기의 고려에서 이미 청자가 양산되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이 한국에서 출토된 월주요 청자의 양상은 한국 초기 청자의 출현 시기의 설정과 그 배경에 중요한 실마리가 되고 있다.
3. 월주요 청자가 한국 초기청자의 출현에 미친 영향
한국 초기청자 요지는 전라남도 강진군 청자요지군 이외, 황해도 원산리, 경기도 시흥시 방산동, 경기도 용인군 서리, 충청남도 서산군 오사리, 전라북도 고창군 용계리,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도통리등에 다수 남아 있다.
이중 원산리와 방산동 요지는 전체길이 30m 이상으로 불규칙적인 직방체전으로 만들어졌고, 아궁이, 요상, 굴뚝으로 구성되고, 요지의 측면에는 9개의 출입구가 있다. 이것과 동일한 구조의 요지가 월주요 상림호 하화심요에서 보여 원산리와 방산동 청자요지는 9세기 중엽까지 소급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한국 초기청자 요지에서 볼 수 있는 M자형 갑발은 월주요지의 갑발과 유사하여 월주요의 영향을 뚜렷히 보이고 있다. 중국의 청자 요지에서 갑발은 중당 시기에 출현하고 형태는 복발형이다. 만당 시기에 이르면 갑발은 M자형이 대부분을 차지 한다. 한국 초기청자 요지에는 m자형 갑발이 대부분이고 일부 복발형이 보이고 있어 늦어도 중국 만당시기의 갑발 상황과 유사하다.
그리고 원산리 요지나 방산동 요지에서 확인되는 요도구인 링형도침 역시 상림호 요지에서 많이 보여 월주요지의 영향을 볼 수 있다. 링형도침은 중국에서 만당 시기에 많이 보이고 9세기 후반 일본의 녹유도기의 요도구에도 보여 한국 초기청자 요지에서 보이는 링형도침은 9세기 후반까지 소급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 초기청자에서 월주요 청자의 영향은 완, 수주, 잔탁, 타호 등의 기형을 통해 알 수 있다. 완은 해무리형굽과 윤형굽으로 전환하는 이전의 과도기적인 윤형굽이 공존하고 있다. 월주요 청자완의 굽 형태가 9세기 중엽에 해무리굽과 윤형이 공존하고 10세기 전반에는 완전히 윤형으로 전환 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한국 초기청자완은 9세기 중엽과 10세기 전반의 사이, 즉 늦어도 9세기 후반에 생산을 개시 한 것으로 생각 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 초기청자에 보이는 수주, 잔탁, 타호 등이 9세기 중엽의 월주요 청자에서 양산된 신출기형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한국 초기청자의 수주, 잔탁, 타호 역시 9세기 중엽의 월주요 청자의 영향을 받아 늦어도 9세기 후반에 생산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강진 용운리 9호요지에 보이는 수주의 주구는 짧고 각이 진 형태로 9세기 전반의 월주요 청자나 장사요 청자의 주구와 유사하여 한국 남부 지망의 초기청자 수주에는 9세기 전반의 월주요 청자수주의 요소가 내재하고 있어 한국초기청자의 생산시기 역시 9세기 후반 이전으로 소급될 가능성이 있다.
잔탁은 방산동, 원산리, 서리, 용운리 등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잔탁은 신라 토기에 보이지 않는 기형으로 9세기 중엽의 월주요 청자잔탁과 유사하여 9세기 중엽의 월주요 청자를 모델로 생산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녹유기도기 잔탁 역시 월주요 청자의 영향으로 9세기 중엽과 후반에 많이 만들어지게 된다.
타호는 방산동, 서리 요지에서 볼 수 있다. 타호는 신라토기에 보이지 않는 기형으로 월주요 청자타호의 영향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된다. 동일한 타호가 일본, 중동의 녹유도기에도 보여 동시대성을 보이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한국 초기청자 완, 수주, 잔탁, 타호가 월주요 청자의 영향을 받은 것 이외, 한국 초기청자 개완, 화형명에 서는 중국의 당대 금속기의 영향이 보인다. 개완은 용운리 9호요지 등에서 출토되고 동일한 기형이 8세기 중엽과 9세기 전반의 금속기에 다수 보여 당대 금속기의 영향으로 만들어 졌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러한 기형은 일본의 9세기 후반 녹유도기에도 보여 당대 금속기의 개완을 모델로 한국에서 청자, 일본에서 녹유도기가 만들어 졌다고 생각 된다.
그리고 화형명은 한국 초기청자에서 많이 보이고 동일한 기형을 9세기 중엽과 후반의 당대 금속기에서 다수 확인 할 수 있어 한국 초기청자 화형명 역시 당대 금속기를 모델로 만들어 졌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한국 초기청자 호, 병, 유병은 신라 토기의 기형을 계승하여 만들었다고 생각된다. 특히 전라남도 강진군 용운리와 전라북도 고창군 용계리에서 출토된 청자호는 동체의 상부에 돌선이 실시되고, 동일한 문양이 9세기 중엽의 신라토기에 집중적으로 보여, 신라 토기의 영향을 받아 9세기 후반에 생산되었다고 생각된다.
반구형의 청자병은 미륵사지 유적에서 월주요 청자와 함께 출토되고 9세기 중엽진죽리 유지에서 생산된 토기병과 유사하여 9세기 중엽의 토기병을 모델로 9세기 후반에 만들어 진 것으로 여겨진다.
이와 같이 한국 초기 청자는 월주요 청자, 당대 금속기, 신라토기의 기형과 문양 등을 모델로 늦어도 9세기 후반에 생산되었다고 생각된다. 특히 월주요는 요의 구조, 요도구, 여러 기형에서 한국 초기청자 요지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어 앞으로 중국에서 요지와 유적의 발굴 조사가 활발하게 진행된다면, 한국초기 청자의 출현시기, 전개, 발전과정 등이 좀더 명확해 질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