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머리를 비우는 시간 - 다츠노카즈오
머리를 비우는 시간 - 다츠노카즈오 지음. 이진주 옮김
눈앞에 열대 해가 펄쳐저 있었다. 에머랄드빛 바다에 넋을 빼앗겨 하루 종일 봐도 질리지 않았다. 화려하면서도 사람을 편안하게, 아니, 나른하게 만드는 부드러운 빛을 가진 바다였다. 이제부터 무엇을 취재하고 누구와 만날 건지, 그런 일들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바다와 마주하고 싶었고, 파도를 느끼고 싶었다. 바람에 크게 몸부림치는 코코야자 나무도 보고 싶었다. 사회부장의 얼굴이 눈앞에 잠깐 떠오르긴 했지만 금세 바닷바람과 함께 날아가 버렸다. 앞바다에는 환초(고리 모양의 산호초)가 있는 곳을 알려주는 하얀선이 보였다. 산호초에 부뒷처 부서지는 파도 저편 에는 짙푸른 바다가 있었다. 수평선을 떠도는 구름도 바닷빛이었다. 매일 고요한 마음으로 바다에 둘러싸여 지내는 나를 또 다른 내가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시간이 많았던 여행이었다.
사람들에겐 저마다의 삶이 있고 마음속에 인상 깊이 남아있는 풍경이 있다. 신문기자에게는 전쟁터의 풍광이거나 인종폭동의 현장, 혹은 난민캠프에 사는 아사 직전의 아이들 모습일 수도 있다. 나 역시 미국이 흑인폭동과 캄보디아의 난민캠프를 취재한 경험이 있고, 그 때의 광경이 지금도 가슴에 남아 있다. 하지만 그런 여러 풍경 중에서 단 하나 만을 고르라고 한다면 남태평양에서 처음 본 에머랄드빛 석호(산호초로 바다와 분리된 낮고 잔잔한 호수)를 꼽을 것이다 잡목 숲이 신록의 계절을 맞이할 때면 우리는 마음이 충만해지고 고양되는 것을 느낀다. 에머랄드빛 석호는 그 마음이 풍요로워지고 고양되는 느낌에 더해 나른함이 깃든 평온함을 준다. 바다와 태양과 바람이 만들어내는 남태평양의 풍경을 한 글자로 축약하면 '게으를 나'가 될 것이다. 이 글자에선 열대 해안의 나무그늘에 누워 뒹굴거릴 때의 나른함이 느껴진다. 그 여행에서 만났던 한 무역회사 직원이 이런 우스갯말을 했다. 지금은 많이 알려진 이야기지만 그래도 소개해 보겠다. 어떤 티모르인이 매일 정신 없이 바쁘게 일하는 직장인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언제나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일하는데, 왜 그렇게 죽도록 일하죠? 그야 열심히 일해서 승진하고 돈도 더 많이 받으려는 거죠. 돈을 더 많이 받으면 뭘할 건데요?' 부지런히 저축할 겁니다 그렇게 부지런히 저축해서 뭘 할 건데요?" 경치 좋은 바닷가나 푸른 초원에 별장을 지을 겁니다.' 별장을 지으면 뭘할 거죠?' 거기서 느긋하게 낮잠이라도 자며 시간을 보내야죠 그러자 티모르인이 웃으며 말했다. 아 그렇군요. 우린 이미 지금 여기서 매일 느긋하게 낮잠을 즐기는데요:' ㅋㅋㅋ
처음 해외여행을 떠난 이후로 많은 날들이 흘렸다. 그 짧지만은 않은 세월 동안 내 마음속엔 언제나 작은 촛불 하나 가 타고 있었다. 그것을 '머리를 비우는 것을 즐기는 불꽃'일고 하면 좋을까, 아니면 '머리를 비우는 시간을 즐기는 것 을 동경하는 불꽃'이러고 하면 좋을까 머리를 비우고 멍하니 있는 시간은 사람에게 매우 소중한 시간이다. 그저 막연하게 소중하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어느 정도 의식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분명 무언가가 축적되고 있다. 아이들에게도 멍하니 있는 시간은 중요하다. 멍하니 있는 동안 아이들은 성장한다. 멍하니 있는 동안에 아이들이 얼마나 성장하는지도 모르면서 걱정만 하는 부모들이 있다. 구시다는 그런 부모들을 지적한 뒤 이렇게 결론내린다. 멍하니 있는 시간은 번데기 시기에 해당한다고 생각해도 좋다. 나비는 유충에서 바로 날개가 돌아 하늘로 날아오르는 게 아니다. 성충이 돼서 날개가 생기기까지는 번데기가 된 후 조용히 명상하는 것 같은 긴 시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번데기 시기를 보내야만 비로소 성충이 될 수 있다. 번데기의 침묵이 있기에 성중의 화려함이 있다. 길고 조용한 명 상의 시간을 통해 창조의 힘이 솟아난다.
경집이여, 우리는 무얼 그리 서두르는가
기시다의 '서두리지 않아도 돼'와 느김이 비슷한 시다. 경집이라는 계절어가 사용된 것을 보면 겨울잠을 끝낸 뱀이 활동하기 시작하는 계절, 즉 생명이 새로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봄을 나타낸 시구다.
자연이 계절의 변화에 따라 서두르지 않고 살아가는 데 비해 인간이라는 동물은 얼마나 허둥지둥 살고 있는가, 무엇 을 그렇게 서두르고 잇는가 하는 마음이 나카무라의 가슴속에 스친 걸지도 모른다. 계절이 바뀌는 대로 그 흐름에 맞춰 좀더 유유히 살고 싶다. 바람 소리와 흙의 보드라움, 비의 따듯함, 새순의 싱싱함, 이런 것들을 마음껏 느끼면서 살아가고 싶다. 이 시구에서는 그런 소망이 담긴 속삭임이 들려온다. 일도 가족도 다 잊고, 어슬렁어슬렁 산책을 하는 시간은 이렇게 신기한 힘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런 산책을 하고 나면 기분도 쾌청해지고 건강도 좋아진다 산책의 효용이다. 어슬렁어슬렁 걷는 것과 멍하니 있는 것은 서로 맞물려 있다 하루 일과를 산책'을 할 때는 머릿속에서 이것 저것 일에 관한 것을 생각한다. 그러나 '어슬렁거리는 산책'을 할 때 는 일이며 가족에 관한 것도 다 잊고 무심에 가까운 상태로 멍하니 시간을 보낸다. 다리 위에 서서 시간이 흐르는 것 도 잊었던 것은 그만큼 쾌적한 바람과 빛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마음의 혼란에서 달아나고 싶은 생각이 강했기 대문인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오랫동안 마음을 비우고 시간을 보내며 마음속에 영양분이 가득 차오른다. 그러면 기분도 쾌청해지고 건강도 좋아진다. 시간 따위 염두에 두지 않고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일에 관한 고민도 하지 않는다. 걱정거리는 책 상 위에 올려둔다. 뺨을 간질이는 강바람이 기분 좋으면 그저 '아, 정말 행복하구나!'라고 느낀다. 강물이 햇빛에 반사 되어 반짝거리면 그 빛의 알갱이들이 참 예쁘다고 느낀다. 단지 느낄 뿐 깊이 파고들지 않는다. 예쁘다고 느끼는 것만 으로도 중분하다. 중요한 건 그것 아닐까
나는 마음을 비우고 멍하니 있는 것 자체가 어떤 경우에는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기분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이치를 따지면서 머리를 굴리지 않고, 뇌를 자유롭게 해방시키고, 감각이 가는 대로 내버려두는 시간은 의외로 중요하다.
하루 종일 멍하니 있을 수 있는 것'이 재산이라니, 절로 감탄이 나온다. 소로의 말처럼 매사추세츠 주 콩고드나 월든 호반 주변에는 윌더니스라는 낱말에 어울리는 길이 얼마든지 있었다. 그 는 끝도 없이 펼쳐진 숲과 높지대를 골라 걸었다. 그런 곳에 진정한 '자연의 진수'가 있다고 그는 말했다
소로의 산책법을 정리해보자
1. 오랜 시간 걷는다
2. 속세에서 해방돼 걷는다
3.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정처 없이 걷는다
4. 야성이 넘치는 대자연 속을 걷는다 이 네 가지 원칙을 통해 소로의 '걷기'에는 생기가 넘쳐난다.
근육을 키우거나 살을 빼기 위한 목적이라면 실내에서 기구를 이용하는 법도 있다. 그러나 소로의 산책 목적은 마음에 활력을 불어봉고, 생명력을 얻고, 대자연의 자양을 듬뿍 얻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숲을 걷고, 늪지대를 걷고, 많은 생명체들을 만나고, 마음을 해방시키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했다. 후지자와가 많은 에세이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종일 뒹굴거리면서 살아가라'는 것도,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저 숲 속에 처박혀 살아가라'는 것도 아니다. 그가 말하려는 것은 '즐거운 순간을 만들자'는 것이다 괴로울 때도 있고 아플 때도 있겠지만, 안 좋은 시간은 잊어버리면 그만이다. 어쨌든 싫은 것도 잊고, 즐거운 순간을 되도록 많이 만들자. 그러기 위해 돈을 벌고 차를 타고 하는 것이다, 돈을 버는 건 귀잖은 일이지만, 즐거운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준비 과정이다. 나는 멍하니 있는 순간이 정말 즐겁다.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아는 즐거움이 있다. 즐거운 순간을 즐기며 살자는 것이 후카자와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젊을 때부터 갖은 고생을 하며 살다가 말년에 크게 성공하는 사람도 있다. 혹은 한 달 중 29일에서 30일은 고통스럽게 살고 나머지 하루만 즐거운 시간을 갖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후카자와는 즐거운 시간보다 괴로운 시간이 더 많은 이런 삶의 방식이 싫었던 것이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먼 길을 떠나는 것이 사람의 일생은 아니다. 사람의 일생은 순간과 찰나의 연속이다. 매 순간 순간이 '그 사람의 인생'인 것이다. 맛있는 것을 먹고, 아름다운 것을 보고, 사랑을 하고 행복을 느끼고, 기쁨으로 가슴 이 벅찬 그런 즐거운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인 것이 바로 사람의 일생이다
자연 속으로 녹아 들다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린다. 나뭇잎 위로 햇살이 쏟아진다. 해질무렵의 비를 머금은 검은 흙 속에서 들풀이 자라고 있 다. 하늘과 바람과 빛과 물과 흙이 병약해진 내 몸을 감싸고 있다. 지구에서 1억 5천만 킬로미터나 떨어저 있는 우주에 떠있는 불덩어리가 품어내는 빛이다. 1억 5천만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태양빛이 지구상의 한 점에 있는 내 마음을 비추고 있다.
그 바람은 정원에서 부는 바람인 동시에 우주의 바람이기도 하다. 빛에도 바람에도 흙에도 생명력이 가득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생명력이 쇠약해진 졌은이에게 강하게 호소하고 있었다. '살아라. 살아라' 라고, 자연에 녹아 드는 순간이란 그런 것이다. 조급해서는 안 되고 짜증을 내서도 안 된다. 괴로워해서도 안 된다. 망상이나 집착, 소외감 따윈 떨쳐버리고 머리를 비운 채 있는 그대로의 힘 모습을 받아들일 때, 아주 짧은 순간일지라도 자연의 힘은 우리를 2차원의 세계로 이끌어간다. 나뭇가지 하나에서도 우주를 발견할 수 있고 개미 한 마리의 움직임에서도 우주가 보인다. 자연에 녹아 든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
무대에 관한 것, 장기에 관한 것, 경기에 관한 것을 떨쳐버리고 기분전환을 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또 잊는다는 것도 중요하다. 머리를 비우고 있을 때, 우리는 머리를 무겁게 짓누르고 신경쓰이게 만드는 일들을 잠시라도 잊으려고 한다. 이렇게 머리를 비우고 멍하니 있는 것과 기분전환은 서로 크게 달라 보이지만 '잊는다'는 공통점을 갖고있다.
기분전환이란 기분이라는 이름의 기어를 바꾸는 것이기도 하다. 뉴질랜드의 아서스 패스에 있는 '윌더니스 로지'에 도착했을 때 나를 맞아준 구면의 경영자 맥스위니는 손님들을 앞에 두고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 오시면 기어를 '빨리'에서 '천천히'로 바꿔주십시오. 눈앞에 펼쳐져 있는 숲과 산들을 보면서 마음을 느굿하게 가져주십시오. 운이 좋으면 산 밑 강을 따라 무지개가 뜰 겁니다. 이곳은 무지개의 명소니가요. 아침엔 산길을 걷는 코스와 호수의 카약놀이 코스 등 다양한 놀이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그 전날 단체손님이 버스를 타고 점심을 먹으러 왔는데, 주변 풍경은 감상할 생각도 않고 식사가 끝나자마자 서둘러 돌아가버렸다고 한다. 맥스위니는 '왜 그렇게 서두르시는 걸까요'라고 말했다. 점심을 먹으러 와준 건 고마운 일이지만 기어를 '천천히'로 바꾸지 않은 채 성급히 돌아버린 손님들이 안타까웠던 것이다.
우리는 ' 빨리'로 속도를 바꾸는 것은 잘 하지만 '느긋하게'로는 잘 바꾸지 못한다
왜 온천일까?
1. 피로가 풀린다
2. 마음을 씻는다
3. 야성이 되살아난다
4. 자연 속에 몸을 담근다
온천은 마음을 비우는 시간을 즐기기 위한 최고의 무대다.
기분전환을 위해
반도의 다이빙, 장기의 명인 모리우치의 야구연습장, 육상 단거리선수 볼트의 부산스러움, 야구선수 에나츠, 서로 전
혀 관련이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공통점이 있다. 그 하나는 '기분 전환'이고, 또 하나는 '잊는다'는 것이다.
반도는 남태평양에서 잠수를 하면서 가부키 무대의 일은 머릿속에서 떨쳐내 버렸을 것이다. 모리우치가 야구연습장
에서 땀을 흘린 것도 대국에 관한 것을 잊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볼트도 카메라를 향해 떠들고 있는 동안 잠시나마 경
기에 관한 긴장과 스트레스를 잊을 수 있지 않았을까. 에나츠 역시 기누가사에게서 '벤치와 불펜엔 신경 쓰지 말고 던
져'라는 말을 듣고 언짱은 기분을 날려보냈을 것이다. 나 또한 원고가 잘 안 써지고 머리가 복잡해지면 체조실에서 몸
을 움직이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잠시 저만치 밀쳐두고 머리를 텅 비운다.
깊게 호흡하며 멍하니 있으면서 기분이 좋아졌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때로는 정적이 살갗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정적 속에서 멍하니 있으며 기분이 좋아지는 걸 느켰다면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항한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가까이에 녹음이 우거진 큰 공원이 있다면 더욱 좋다. 그곳엔 분명 당신이 좋아하는 나무가 몇 그루 있을 것이다. 그 나무들 앞에 서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건 이떨까. <상식을 거스르는 사람들>
당신은 지금 숲속 깊숙한 곳에 있는 큰 늪가에 서있고, 늪의 수면엔 달이 비치고 있다. 작은 돌을 집어 늪에 던진다. 달의 모양이 흔들린다. 또 돌을 던진다. 수면은 계속 물결을 일으키고 달의 모양도 계속해서 흐트러진다. 그것이 바로 어지럽게 흔들리는 당신의 마음이다. 돌 던지기를 멈춘다. 동적인 것이 정적인 것으로 바뀌면서 늪의 수면에 정적이 돌아온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곧 돌 던지기를 멈춘다는 것이다. 그러면 수면의 잔물결이 사라지면서 달의 모양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음에 평온이 깃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음이 평온해지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이 들린다.<머리를 비우는 소중한 시간>
고독의힘'
혼자 있는 시간은 우리의 삶 속에서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시간이다. 우리가 혼자 있을 때에만 생겨나는 원동력도 있다. 예술가는 창조하기 위해, 작가는 생각을 깊게 하기 위해, 음악가는 작곡을 하기 이해, 그리고 성자는 기도를 하 기 위해 혼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혼자 있다. 혼자 있으면 마음을 평온하게 하거나 비울 수 있다. 멍하니 있으면 겸허한 마음으로 자신의 내면과 마주 하게 된다. 마음속에서 뭔가가 번뜩이지만 금세 사라져 버려 감히 뒤쫓지는 못한다. 또다시 멍하니 시간을 보낸다.
어떤 대상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을 때, 그 대상에 지나치게 얽매이면 번뜩임이 찾아오지 않는다. 대상이 되는 것을 먼저 생각에서 멀찌감치 떨어뜨려놓고 꽃향기나 집집마다 놓인 화분에 핀 어여쁜 꽃에 시선을 빼앗겼을 때, 즉 마음이 평온해져서 텅 빈 상태가 되었을 때 그 빈 공간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이 있는 데, 그것이 바로 번뜩임이다. 번뜩임은 잊었을 때쯤 찾아든다. 그것도 산책의 효과일까 <산책의 묘미>
신칸센을 타면 들판 논두렁길에 자주광대나물, 잡초, 개불알풀꽃이 피어 있어도 보지 못할 때가 많다. 도마뱀이 휙 지나가고, 개구리가 개굴개굴 울고 있어도 눈치채지 못한다. 멀리 숲에 박꽃이 피어 있어도 알아채지 못한다. 아니, 알아챌 수가 없다. 신칸센의 세계는 풀꽃을 보고 계절이 바뀌는 것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과는 인연이 없다. 풀잎이 바람에 흔들리며 빛나는 모습에 가슴이 뜨거워지는 삶은 고속도로의 세계와는 무관하다. 스피드를 내며 달리는 사람들이 풀이나 나무를 자세히 볼 수 없듯이 쓸데없는 시간을 잘라내는 사람들은 사는 것이 바빠 삶의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밀한 변화를 알아채지 못한다. <‘쓸데없는 시간’은 정말 쓸데없을까?>
신칸센을 타면 들판 논두렁길에 자주광대나물, 잡초, 개불알풀꽃이 피어 있어도 보지 못할 때가 많다. 도마뱀이 휙 지나가고, 개구리가 개굴개굴 울고 있어도 눈치채지 못한다. 멀리 숲에 박꽃이 피어 있어도 알아채지 못한다. 아니, 알아챌 수가 없다. 신칸센의 세계는 풀꽃을 보고 계절이 바뀌는 것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과는 인연이 없다. 풀잎이 바람에 흔들리며 빛나는 모습에 가슴이 뜨거워지는 삶은 고속도로의 세계와는 무관하다. 스피드를 내며 달리는 사람들이 풀이나 나무를 자세히 볼 수 없듯이 쓸데없는 시간을 잘라내는 사람들은 사는 것이 바빠 삶의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밀한 변화를 알아채지 못한다. <‘쓸데없는 시간’은 정말 쓸데없을까?>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고, 무리지어 있고 싶은 습성에 익숙해지면 사람은 결국 ‘혼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따돌림당하는 것이 두려워진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있다고 해서 마음이 채워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혼자 있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사람들은 함께 있으려고 한다.
(...)
그러나 혼자 있는 시간은 우리의 삶 속에서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시간이다. 우리가 혼자 있을 때에만 생겨나는 원동력도 있다. 예술가는 창조하기 위해, 작가는 생각을 깊게 하기 위해, 음악가는 작곡을 하기 위해, 그리고 성자는 기도를 하기 위해 혼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獨-혼자 있는 것>
눈을 감고 반가부좌를 하고 보내는 밤 멍하니 앉아 깨달음에 대해 생각한다.
이 노래에는 괴로워하고 즐거워하면서 깨달은 하나의 대답이 있다. 여행을 하는 것, 때묻지 않은 자연 속으로 숨는 것, 산책하는 것, 온천에 들어가는 것, 한가함을 즐기는 것, 혼자가 되는 것, 잡다한 일에서 해방되는 것, 멋진 지역의 사람들과 만난 것, 그리고 자주 마음을 비우는 시간을 가졌던 것, 요시이는 고치의 이노사와 온천에서 그런 멍하니 사는 길의 핵심이 되는 부분을 실천한 것이다. 그가 다시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閑-가시울타리에 둘러싸여>
도대체 우리는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일까. 초등학교 문 안을 들어서고부터 우리는 성실하게 학생시절을 달려나가려고 한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부터 진짜 생활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학교라는 곳에서 빠져나가 직업을 구하면 직업에서 성취감을 얻으려고 한다. 그 후에 진정한 생활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후의 생활은 없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 그어진 하나의 선이다. 이 선 위에 생활이 없으면 생활은 어디에도 없다.
"정년퇴직을 하고 나면 멋진 생활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현역 때는 달려나갈 기세로 일을 한다. 그러나 멋진 생활은 대개 환상일 뿐이며, 젊었을 때부터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여기고 즐기며 살지 않는 사람에겐 미래에도 충실한 생활은 없을 것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
비움은 곧 채움이다 긍정적인 멍하기 세상의 지배적인 풍조에 반하는 사고방식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멍하니'의 경우 '부정적인 멍하니'가 지 배적인 풍조리면, '긍정적인 멍하니'는 뇌의 활동을 활발하게 해주고 우리의 생명력을 되살려준다고 주장하는 것은 의외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능하다면 하루에 몇 번이고 멍하니 마음을 비우는 시간을 갖고 싶다. 30분, 아니, 3분이라도 좋다. 단 30초라도 종 명~ 하니 햇빛에 반짝이는 나못잎들을 바라보고 싶다. 목련 한 잎 한 잎에 비가 든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다. 한 달 동안 적어도 며질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싶다. 때로는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산이나 숲 이나 바다를 찾아가 멍하니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 2주 여행이라도 좋다. 3일간의 나들이라도 좋다. 그런 시간들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다. 그런 시간들이 당신에게 소중한 삶의 양식을 줄 것이다. 삶을 소중하게 여기는 요점은 '오늘'이라는 날, '지금'이라는 시간을 느긋하게 평온하게 보내고 멍하니 있는 시간을 즐기며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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