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상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 본사 송광사의 말사이다.
1997년에 세워져 최고급 요정인 대원각이 불교 사찰로 탈바꿈한 특이한 설립 이력으로 유명한 곳이다.
대원각 소유주 김영한은 16살 때 조선권번에서 궁중아악과 가무를 가르친 금하 하규일의 문하에 들어가 진향이라는 이름의 기생이 됐다. 그가 지금의 길상사 자리를 사들여 청암장이라는 한식당을 운영했고, 군사정권 시절 대형 요정인 대원각이 됐다.
1970~80년대 군사정권 시절은 '요정 정치'라고 불릴 만큼 요정이 큰 영향력을 가진 곳이었다. 그중에서도 3대 요정으로 불린 대원각은 박정희 시절 고위급 인사들과 재벌들의 비밀 회동 장소로 자주 이용됐다. 이처럼 요정 문화를 대표하는 대원각을 통해 김영한은 엄청난 부를 이뤘다.
공덕주 김영한(1916~1999)은 가난 때문에 팔려가다시피 만난 남편과 사별한 후, 기생이 되었다. 기명은 진향(眞香). 성북동 기슭에 서울 3대 요정 중의 하나인 대원각을 1950년대부터 운영해 부를 얻었지만, 명예와는 거리가 먼 삶이었다. 김영한은 승려 법정의 무소유를 읽고 감명을 받아, 1987년 법정에게 요정 터 7,000여 평과 40여 채의 건물을 시주하고 절을 세워달라며 간청하였다. 법정은 처음에 사양하였으나, 결국 1995년 이를 받아들여 대한불교조계종 송광사의 말사로 등록하여 길상사를 세웠고, 이전 길상사의 창건 법회에서 길상화(吉祥華)라는 법명을 받았다. 당시 시가로도 1,000억 원이 넘는 액수라고 하는데, 무소유를 설하던 법정이 이렇게 크고 아름다운 시주를 받은 것에 대하여 불교 내부에서도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법정이 신나서 덥석 받은 것도 아니고, 10년 가까운 실랑이 끝에 김영한의 마지막 원을 이루어준 것이라 어느 정도 참작할만한 근거는 된다.
1999년에 김영한이 죽자 화장하여 절터에 뿌려졌다. 절터에 골고루 산골했기 때문에 따로 무덤은 없으나, 그녀를 기리는 공덕비가 절 안에 있다. 2010년에는 법정도 여기서 사망했다. 극락전에는 김영한의 영정이 있으며, 진영각에는 법정의 영정과 유품 등을 전시하고있다(영정과 유품은 사진촬영이 금지되어있음). 사망 이후, 딸 서모씨가 조계종에 50억 원을 달라고 소송하여 승소했다.
법정이 처음 출가한 사찰 송광사의 옛 이름이 길상사다. 출가한 사찰과 한때나마 같은 이름을 사진 사찰에서 사망하니,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일까.
요정이었던 길상사 금당은 불상과 주변물 정도만 가져다 놓았을뿐 더 이상 꾸미지 않아 상당히 썰렁한 분위기이다.
현대식 조각품인 관세음보살상은 성모 마리아와 비슷한 분위기이다. 이는 법정이 종교 간 화합을 염원하는 마음에 천주교 신자인 조각가 최종태에게 의뢰하여 봉안하였기 때문이다. 사찰의 설립식 행사에 김수환추기경이 직접 절을 방문해 축사를 했고, 법정은 이에 대한 답례로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성당을 방문해 답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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